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삼성그룹과 맺은 ‘빅딜’을 통해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올초 배임죄 등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자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일괄 사퇴한 지 9개월여 만이다. 이번 빅딜을 두고는 김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진 한화에스앤시(S&C)의 자회사 한화에너지가 지분 인수에 참여한 까닭에 3세 승계 구도와 관련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화그룹은 삼성의 방산·석유화학 계열사를 대거 인수하는 이번 빅딜에서 김승연 회장이 주도적으로 나선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이) 이번 빅딜의 방점을 찍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삼성테크윈에 인수 제안이 들어간 뒤 삼성 쪽에서 삼성테크윈에 지분이 엮여 있는 삼성종합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 인수를 역제안했고, 한화케미칼도 규모의 경제를 위해 석유화학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걸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내부에선 ㈜한화의 사업을 넓히기 위해 기업 인수합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2~3년전부터 논의됐다고 한다. ㈜한화가 탄약 등 재래식 무기 쪽으로 포트폴리오가 치우쳐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에 대한 배임혐의 재판과 법정구속이 이어지자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가, 올 2월 김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되면서 빅딜 관련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계 안팎에선 지난 9월 현 정부 주요 부처 장관들이 기업인 사면과 가석방 가능성의 운을 뗐던 것과 맞물려 김 회장의 경영 복귀 임박을 점치는 예측도 나온다. 김 회장은 현재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특별사면을 받지 않는 한 다시 등기임원이 되는 등 공식적 경영 복귀 길은 막혀 있는 상태다. 김 회장은 앞서 2007년 9월 ‘보복 폭행’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고 곧바로 대표이사직에 복귀한 바 있다.
삼성그룹 방위산업과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해당 사업 주체인 ㈜한화와 한화케미칼 이외에 열병합발전사업을 하는 한화에너지가 나선 점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대 2조원에 이르는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 직접적 사업관계사인 ㈜한화와 한화케미칼의 자금 동원력에 다소 부족한 점을 수익성이 높은 대주주 일가 개인회사 성격인 한화에너지가 지원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3개 회사의 보유현금은 ㈜한화 718억원, 한화케미칼 1530억원, 한화에너지 580억원으로 3000억원 수준이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 일가 개인회사인 한화에스앤시(S&C) 소유(지분율 100%) 회사다. 지난해 162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영업이익률이 30%를 웃돈다. 시장에서는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에스앤시의 몸집을 불리고 이 회사를 추후 지배구조의 정점인 ㈜한화와 합병해 후계 승계를 완성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곤 한다. 이 때문에 한화에너지가 사업 관련성이 떨어지는 삼성종합화학 인수합병에 나선 데 관심이 쏠린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인수주체로 한화케미칼 외에 한화에너지가 포함된 것은 한화케미칼의 사업기회를 유용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