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오른쪽)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종료에 관한 양국 정부간 합의 의사록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월요리포트] TPP와 미-중 경제 전쟁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 선언으로 일본을 뺀 세계 주요 경제권과 양자 자유무역협정 타결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 가입에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조급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연합(EU)·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한 지 2~3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득실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데다, 지리적 인접성 탓에 파급효과가 큰 한-중 협정이 불러올 국내 산업 구조조정의 부담도 상당하다. 또 미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과 관련해 통상 압박을 강화하며 티피피 가입 허용에 이를 연계할 뜻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비싼 입장료’ 논란마저 키우고 있다.
최근 정부와 경제단체 등에서 한-중 협정 타결 이후 역량을 집중해야 할 통상 과제는 티피피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통상 이슈 가운데 가장 큰 한-중 협정 타결로 중국권 시장 확보를 했고, 티피피는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형 메가(거대) 자유무역협정으로 전문가, 기업들, 여론 그룹에서도 관심이 높아졌으니 이제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정치 환경을 볼 때 내년 상반기가 티피피 타결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가입 타진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또 경제 5단체 가운데 수출기업들을 대변하는 한국무역협회 한덕수 회장도 티피피 전도사로 나섰다. 경제부총리·주미대사 등을 지낸 통상전문 관료로서 ‘자유무역협정 전도사’로도 불렸던 한 회장은 지난달 17일부터 일주일가량 미국을 방문해 현지 의회와 업계 인사들에게 한국의 티피피 조기 가입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펼쳤다. 한 회장은 3일 ‘무역의 날’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일본은 우리와 달리 다른 나라와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많이 맺지 못했는데, 티피피로 일거에 이를 만회하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며 “이 효과를 상쇄하려면 우리가 티피피에 가입해서 일본과 같은 위치에 서야지 안 그러면 경제적 피해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빠지면 경제적 피해 크다”
정부관료·경제단체장 여론몰이
미, 통상압력 등 비싼 입장료 요구
전문가들 사이에 신중론 일어
“한-중 협정은 우리외교 균형추
뜻 못살린채 TPP에 목매서야” 우리 경제·통상 환경에서 티피피는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추가되는 의미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한-중과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을 잇따라 타결하면서 티피피 협상 참여 12개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뺀 10개국과 모두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타결·발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멕시코와는 한때 양자 협상을 진행했으나 서로 예민한 이슈에 대한 이견이 너무 커서 수년간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이러다 보니 티피피 가입 때 우리 경제의 득실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산업부 티피피대책단 여한구 과장은 “티피피를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티피피는 부분의 합을 넘어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21세기형 자유무역협정이란 평가를 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수출하는 형식으로 각국 기업들이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축한 상태인데 한국이 티피피 역외로 빠져버리면 이런 글로벌 한국 기업에 대한 수요가 일본으로 전환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던 전문가 가운데도 티피피에는 신중론과 우려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한-일 양자 자유무역협정은 못한다면서 티피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티피피에서 빠지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한국이 제외돼 우려된다는 것은 주로 미국에서 나오는 주장인데 그건 지금껏 한국이 촘촘하게 맺어놓은 양자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가 별 쓸모가 없다는 황당한 소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위치에선 티피피 타결 자체가 안 되는 게 가장 좋고, 남들 하는데 끼어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익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너무 초조해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티피피 가입의 국제정치적 함의도 잘 따져봐야 할 사항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미·일이 밀착해 주도하는 티피피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맞서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볼 때 주요 2개국(G2)과의 경제·외교 관계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불리한 협상 참여 조건이나 미국의 통상 압력을 감수하는 등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티피피 가입에 목을 매는 것은 부적절한 판단이란 얘기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중 관계는 경제뿐 아니라 대북 문제 등과 얽혀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한 상황에서 한-중 협정 타결은 우리 외교에서 균형추를 잡아주는 함의가 있다”며 “한-중 협정 카드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티피피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것은 미·일의 정치·경제적 밀월에 별다른 실익도 없이 끼어들려 하는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티피피 문전에서 미·일 등 12개 참여국의 가입 승인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협상이 막바지 단계라서 한국은 기존 참여국들 간 협상이 끝난 뒤에 가입 여부를 타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 정부의 관심 표명 이래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협정 이행 수준 개선을 티피피 가입을 위한 실질적 선행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중·대형차에 부담금을 매기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내년 시행 일정이 2021년으로 미뤄지는 등 일부는 미국 업계 뜻이 반영됐다. 그러나 미국 쪽은 여전히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특허 신약과 의료장비 건강보험 수가 인상, 복제의약품 허가신청 이의제기권 강화, 금융정보 국외이전 절차 원활화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는 티피피 가입 논의와 한-미 협정 이행 수준 점검은 별도라는 게 공식적인 태도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협정 이행 수준은 서로 문제를 따져봐서 정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정부는 두 문제를 완전히 분리해 대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한덕수 무협 회장은 “우리가 티피피에 들어가려면 미국 정부는 의회에 보고하고 90일간 논의를 진행하는데 미국 업계의 찬성 의견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로비력이 센 자동차·제약·금융 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이들은 티피피에 들어오려면 한-미 협정 이행 문제에 확실한 개선을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입장료’ 문제는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중국이 제조업 상품 위주로 낮은 수준으로 추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대신에 미국은 지적재산권·경쟁정책 등을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선점해서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에서 중국을 누르려 하고 있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역내 시장 개방 수준은 우리에게도 리스크가 크고 경제개발 격차가 큰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적절한 것인지 의구심이 큰 상황이라서 우리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점검해 가며 속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부관료·경제단체장 여론몰이
미, 통상압력 등 비싼 입장료 요구
전문가들 사이에 신중론 일어
“한-중 협정은 우리외교 균형추
뜻 못살린채 TPP에 목매서야” 우리 경제·통상 환경에서 티피피는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추가되는 의미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한-중과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을 잇따라 타결하면서 티피피 협상 참여 12개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뺀 10개국과 모두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타결·발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멕시코와는 한때 양자 협상을 진행했으나 서로 예민한 이슈에 대한 이견이 너무 커서 수년간 협상이 중단된 상태다. 이러다 보니 티피피 가입 때 우리 경제의 득실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산업부 티피피대책단 여한구 과장은 “티피피를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티피피는 부분의 합을 넘어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21세기형 자유무역협정이란 평가를 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수출하는 형식으로 각국 기업들이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축한 상태인데 한국이 티피피 역외로 빠져버리면 이런 글로벌 한국 기업에 대한 수요가 일본으로 전환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던 전문가 가운데도 티피피에는 신중론과 우려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는 “한-일 양자 자유무역협정은 못한다면서 티피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티피피에서 빠지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한국이 제외돼 우려된다는 것은 주로 미국에서 나오는 주장인데 그건 지금껏 한국이 촘촘하게 맺어놓은 양자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가 별 쓸모가 없다는 황당한 소리”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위치에선 티피피 타결 자체가 안 되는 게 가장 좋고, 남들 하는데 끼어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익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너무 초조해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티피피 가입의 국제정치적 함의도 잘 따져봐야 할 사항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미·일이 밀착해 주도하는 티피피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맞서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볼 때 주요 2개국(G2)과의 경제·외교 관계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불리한 협상 참여 조건이나 미국의 통상 압력을 감수하는 등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티피피 가입에 목을 매는 것은 부적절한 판단이란 얘기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중 관계는 경제뿐 아니라 대북 문제 등과 얽혀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한 상황에서 한-중 협정 타결은 우리 외교에서 균형추를 잡아주는 함의가 있다”며 “한-중 협정 카드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티피피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것은 미·일의 정치·경제적 밀월에 별다른 실익도 없이 끼어들려 하는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티피피 문전에서 미·일 등 12개 참여국의 가입 승인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협상이 막바지 단계라서 한국은 기존 참여국들 간 협상이 끝난 뒤에 가입 여부를 타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 정부의 관심 표명 이래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협정 이행 수준 개선을 티피피 가입을 위한 실질적 선행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중·대형차에 부담금을 매기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내년 시행 일정이 2021년으로 미뤄지는 등 일부는 미국 업계 뜻이 반영됐다. 그러나 미국 쪽은 여전히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특허 신약과 의료장비 건강보험 수가 인상, 복제의약품 허가신청 이의제기권 강화, 금융정보 국외이전 절차 원활화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는 티피피 가입 논의와 한-미 협정 이행 수준 점검은 별도라는 게 공식적인 태도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협정 이행 수준은 서로 문제를 따져봐서 정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정부는 두 문제를 완전히 분리해 대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한덕수 무협 회장은 “우리가 티피피에 들어가려면 미국 정부는 의회에 보고하고 90일간 논의를 진행하는데 미국 업계의 찬성 의견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로비력이 센 자동차·제약·금융 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이들은 티피피에 들어오려면 한-미 협정 이행 문제에 확실한 개선을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입장료’ 문제는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중국이 제조업 상품 위주로 낮은 수준으로 추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대신에 미국은 지적재산권·경쟁정책 등을 포괄하는 높은 수준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선점해서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에서 중국을 누르려 하고 있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역내 시장 개방 수준은 우리에게도 리스크가 크고 경제개발 격차가 큰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적절한 것인지 의구심이 큰 상황이라서 우리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점검해 가며 속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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