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현장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돌아왔다. 그는 지난 3일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사옥으로 출근했고, 퇴근길에는 경영 계획을 묻는 취재진한테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화 관계자도 “(김 회장이) 경영 현안들을 챙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본사 외에 여러 곳에 집무실을 두고 있는 김 회장이 눈에 띄게 본사로 출퇴근하는 것 자체가 대외적으로 ‘경영 복귀’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지난 2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배임죄 등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된 직후 ㈜한화·한화케미칼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사퇴했으니 9개월여 만의 업무 재개다.
김 회장의 이런 행보는 우리 재벌 기업 지배구조의 특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영 복귀’라 하면 공식적으로는 계열사 등기이사로 돌아오는 게 맞다. 그러나 김 회장은 현행법상 집행유예 기간 만료 전에 특별사면 없이 등기이사를 맡는 게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빅딜 결정을 주도했고, 한화 관계자도 “그동안 그룹 회장 구실은 계속해왔다”고 전한다. 법적 의사결정권을 지니고 책임도 지는 ‘등기이사’를 그만뒀을 뿐, ‘회장님’ 자리는 물러난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처럼 ‘사실상의 이사’(shadow director)로 활동하는 회장의 경영활동과 관련해 문제가 생겼을 때 실질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우리 상법은 등기이사를 맡지 않은 채 경영을 전횡하는 대주주 일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도록 1998년 ‘업무집행 지시자의 책임’에 관한 조항을 도입했다.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회장·사장 등의 명칭으로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는 자도 이사에 준한 책임을 묻도록 하고 주주대표소송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 일가가 이 법의 적용을 받은 사례는 없다. 손실이 발생해도 ‘회장님’의 의사결정 사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김 회장도 업무집행 지시자로서의 책임과 관련해 민사소송의 피고가 돼 있다. 소송을 제기한 경제개혁연대 쪽은 “한화투자증권 등 계열사가 대한생명 주식 콜옵션을 ㈜한화 등에 무상 양도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 그룹 재무팀장은 형사적으로 배임 유죄를 받았지만, 김 회장은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김 회장이 한화투자증권 이사는 아니었지만 실질적 경영 의사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민사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죄를 저지른 경제인의 임원 복귀를 제한한 것은 재발을 방지하려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대주주 일가에 대한 특별사면 관행화와 법무부의 경제사범 취업제한 관리 부실로 사실상 실효성이 사라졌다. 지난 10년간 경제·사회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10대 그룹 대주주 일가는 형 확정 뒤 길어도 1년 안에 대부분 사면을 받았다. 이제 남은 누군가도 사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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