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는 폴 로머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
“성장 위해 효율적 ‘도시개발’ 정책 펼쳐야”
해마다 유력한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폴 로머 뉴욕대 교수가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가 지난 수십년간 서구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당한 정도의 도시화’가 주요 힘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11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한-아세안 시이오(CEO) 서밋’ 회의 기조강연에서 폴 로머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경기회복이 미약하고 또 지역별로 회복 속도에서 차이가 크다”며 “중국 등 아시아의 성장은 강하고 안정적인데, 그 배경에는 도시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화 진전이 더 높은 소득과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점은 특정 시점에서 각 나라를 관찰하거나 특정 국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해도 사실로 확인된다고 그는 말했다.
도시화가 곧 소득성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일하는 사람들간의 쉽고 잦은 접촉에서 생겨나는 ‘생산성 향상’ 효과에 있다. 한 나라에서 전체 도시면적의 증가는 도시 거주인구의 증가 및 도시 인구 일인당 차지하는 도시면적의 증가를 뜻한다. 이 때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다른 노동자와 항상 얼굴을 맞대고 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들이 지닌 지식과 기술이 서로 빠르게 확산되고 이것이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다. 산림업·광업 등 극히 적은 예외를 빼놓고 보면, 어느 경제에서든 사람들은 ‘잘 운영되는 도시’에서 더욱 생산적으로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식이 경제성장의 요체”라는 이른바 내생적 신성장이론을 주창해온 로머 교수가 이제는 지식을 ‘도시화’라는 열쇠로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강연에서 로머는 “스마트폰 같은 통신기술 발달이 사람들 사이의 얼굴 접촉을 대체할 것이란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인도는 ‘더 많은 도시화’ 없이 20여년간 경제가 성장한 반면, 브라질은 ‘더 많은 성장’ 없이 도시화를 이룬 나라인데 두 국가 모두 도시화 수준과 소득성장 수준이 함께 이뤄지는 ‘현대적 발전 경로’에 들어서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국과 중국은 이 경로를 밟거나 밟아온 경제이며, 급속한 도시화가 경제적 효율성과 빠른 성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로머 교수는 주장했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 하강 국면에 대응해 대대적인 도시화 및 도시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재정을 지출해 경기를 자극하고 일인당 생산성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은 도시화를 통해 소득과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국가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따라잡기 경제’를 넘어 선진국(프론티어 경제)으로 이행하는 전환점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며 “한국은 아세안의 다른 개발도상국에 ‘도시화를 통한 성장’의 성공적 사례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머 교수는 또, 불평등을 줄이는 ‘빈곤층 친화적 성장’이 필요한데 이런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급속한 도시화 경로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경제든 현대화·도시화 과정에서 경제적 구조 전환을 겪게 된다. 이 때 관건은 도시면적의 거대한 증가에 경제가 얼마나 잘 조정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세대가 보다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도시화에 투자해 총 도시면적을 늘려간다면 후세대 수십억명의 삶의 질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이고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로머에 따르면, 향후 100년 안에 전세계 인구증가가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겠지만, 2010년 현재 전세계 인구(69억명) 중 도시거주인구 36억명(개도국 약 26억명·선진국 약 9억6천만명)에서 1백년 뒤인 2110년에는 전 세계 인구(110억명 예상) 중 도시 인구가 무려 90억명(개도국 78억명·선진국 12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로머 교수는 한국처럼 이미 도시화가 상당한 정도로 이뤄진 경제의 경우, 세계화 시대에 전세계로 상품과 기술·지식을 수입·수출할 수 있는 거대 도시를 해안 접경지역에 만들어 수출 허브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만 “도시화와 경제성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도시화가 국가주도의 산업정책보다는 시장 친화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국가는 부지조성과 도로 등 기반시설구축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