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어민들이 명태를 말리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1년 1인당 10여마리로 어류 소비 1위
국내 어획량은 점점 줄어 사실상 ‘0’
새끼 명태 ‘노가리’ 남획 탓
동해 수온 변화 영향이라는 주장도
정부, 올해 ‘명태 살리기 사업’ 개시
방류·양식 성공할지는 미지수
국내 어획량은 점점 줄어 사실상 ‘0’
새끼 명태 ‘노가리’ 남획 탓
동해 수온 변화 영향이라는 주장도
정부, 올해 ‘명태 살리기 사업’ 개시
방류·양식 성공할지는 미지수
명태는 ‘국민 생선’이다. 명태는 2010년 32만t, 2011년 28만t, 2012년 30만t이 국내에서 소비돼 전체 어류 가운데 매년 1위였다. 1년에 한국인 1인당 5.8㎏, 10~15마리씩 먹었다는 이야기다. 수입 규모도 2010년 36만t, 2011년 26만t, 2012년 33만t으로 이 역시 매년 1위였다.
명태가 한국의 국민 생선인 점은 주변국이 사용하는 명태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명태를 일본에서는 멘타이(또는 스케토다라), 중국에서는 밍타이위(또는 샤쉐), 러시아에서는 민타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들은 모두 한국어 ‘명태’에서 유래된 것이다. ‘명태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명태의 최근 국내(동해) 어획량은 초라하다. 2007년 이후 매년 1t 미만이고, 액수로는 900만~2900만원어치밖에 안 된다. 2014년엔 11월까지 단 207마리만 잡혔다. 인공 수정과 부화를 위해 살아있는 명태에 50만원, 죽은 명태에 5만원의 보상금을 걸었는데도 이것밖에 안 잡혔다. 현재 강원도 고성의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이하 심층수센터)에서 올해 산 채로 잡힌 명태 20마리 가운데 살아남은 3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론 원양어업에서는 우리 어선들이 1980년 이후 매년 2만~33만t의 명태를 잡고 있다. 지난 12월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 침몰한 ‘501오룡호’ 역시 명태잡이 배였다. 현재 원양 명태잡이는 대부분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이뤄지며, 할당량(쿼터)의 제한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때 30만t을 넘었던 원양 명태 어획량은 현재 4만t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해역에서 잡아오는 명태가 아무리 많더라도 동해에서 잡는 명태와 그 의미가 같을 수는 없다.
동해 명태의 어획량은 해방 이후 급격한 변동을 겪었다. 동해 명태의 1년 평균 어획량은 1950년대 2만4천t, 1960년대 1만7천t이었으나, 1970년대 7만t, 1980년대 7만4천t으로 치솟았다. 1981년엔 해방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0만t을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 6천t, 2000년대엔 100t 이하, 2007년 이후엔 1t 이하로 급감했다.
이렇게 명태 어획량이 롤러코스터를 탄 이유는 정부가 1963년 ‘수산자원보호령’으로 금지했던 ‘노가리잡이’를 1970년 전면 허용했기 때문이다. 노가리는 길이 27㎝ 이하의 미성숙한 어린 명태다. 노가리잡이가 허용된 1975~1997년 사이 전체 명태 어획량(무게)의 68%, 어획 마릿수의 91%가 노가리였다. 해양수산부 오광석 수산자원정책과장은 “노가리잡이가 극심했던 1976년엔 전체 명태 어획량의 91.9%가 노가리였다. 당시에 미래의 명태를 모두 잡아버린 셈이었다”고 말했다.
노가리의 남획으로 1992년 명태 어획량이 1만t 이하로 떨어지자, 뒤늦게 정부는 1996년 10㎝ 이하, 2003년엔 15㎝ 이하, 2006년 27㎝ 이하의 명태를 잡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36년 동안의 노가리 남획은 치명적이어서 결국 2007년부터 명태는 사실상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다. 명태가 동해에서 사라진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였다.
1990년대 이후 명태가 사라진 데는 동해의 수온 변화가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명태는 수심 200m 이하, 수온 2~10℃에서 사는 냉수성 어종인데, 심층수에서 태어나 표층수로 떠오른 뒤 표층수에서 알을 깨고 나와 다시 심층수로 옮겨가기 때문에 수심에 따른 수온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명태의 산란기인 2월에 강원도 주문진 앞 동해의 표면 온도를 확인해 보니, 1970년대 7.85℃, 1980년대 7.77℃였다가 1990년대 9.19℃, 2000년대 10.56℃로 크게 올랐다. 또 2000년대엔 수심 50m의 수온이 8.95℃로 다른 시기보다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이때의 높은 수온은 명태의 생장이나 수정에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수심 100m, 200m, 500m의 수온은 명태가 많았던 1980년대 이전과 명태가 사라진 1990년대 이후 사이에 큰 변화가 없다. 서영상 국립수산과학원 수산해양종합과장은 “명태의 생태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제부터라도 남획이나 수온 변화 등 모든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늦게 반성한 정부는 올해부터 ‘명태 살리기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지난 2월 대통령에게 새해의 주요 업무로 보고했고, 해수부와 동해수산연구소, 심층수센터, 강릉원주대가 공동으로 명태 살리기에 나섰다. 실제로 지난 2~6월엔 동해 명태의 알과 정액을 확보해 수정, 부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12만개의 수정란 가운데 9만4천마리를 부화시켜 1㎝까지 키웠으나, 아쉽게도 75일 만에 모두 ‘부레 팽창증’으로 죽어버렸다.
내년에는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 부화한 어린 명태를 동해에 방류할 계획이다. 2015년에 100만마리, 2016년 500만마리, 2018년 5천만마리, 2020년 5억마리를 방류할 목표를 세웠다. 명태 암컷 한 마리가 매년 산란기에 20만~100만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어미 명태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규모다. 또 2018년 이후엔 수정란이나 어린 명태를 민간 사업자에게 보급해 양식도 시도한다. 이런 방류와 양식이 성공하면 2020년 이후에는 동해의 명태를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게 해수부의 기대다.
대구나 청어, 홍어, 참조기, 도루묵 등 과거에 크게 줄어들었다가 정부와 어민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어종들은 꽤 많다. ‘국민 생선’ 명태도 이들처럼 다시 우리 바다에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종/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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