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재벌가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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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지원은 체육인들에게 절박하다. 비인기 종목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승마는 다르다. 한화그룹이 물러나고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이 차기 회장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 대한승마협회 회장은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이사다. 차 회장은 지난해 11월25일 열린 승마협회 이사회에서 “올해까지만 회장직을 맡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는 이날 이영국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상무를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상무는 삼성 승마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가 조만간 물러나고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직을 맡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승마협회는 오는 19일과 23일 각각 이사회와 대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차기 회장이 공식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게 되면 5년 만에 회장사로 복귀하는 것이다. 삼성은 1995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승마협회 회장사를 지냈다.
한화와 삼성의 승마 사랑은 유별나다. 한화는 2003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국내 최대 규모 승마장인 로얄새들승마클럽을 열었고 2006년에는 갤러리아승마단을 창단했다.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동선씨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세개나 딴 국가대표 출신이다. 한화는 승용마 판매 사업도 벌이고 있다.
삼성은 1986년 국내 최초로 승마 선수단을 창단했다. 2010년 선수단을 해체했지만 이후에도 승마단은 유지하면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재활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승마 국가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다.
삼성이 최근 럭비 등 비인기 스포츠 종목에서 철수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유독 승마협회 회장직에만 재입성하려는 것을 두고 승마업계 일각에서는 ‘정윤회씨 딸 정○○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현 정권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딸을 ‘합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려는 포석 아니냐는 것이다. 삼성의 회장직 승계 논의가 외부로 알려진 시점은 지난해 11월 말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파문이 불거지기 전이다. 전직 지역 승마협회 관계자는 “(3세 승계가 현안인) 삼성 외에도 총수 문제가 걸려 있는 몇몇 대기업들이 승마협회에 눈독을 들인 것으로 안다. ‘정○○ 올림픽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해 자격을 얻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 신창무 전 국가대표 승마 코치는 “10억원 정도 하는 말 두마리는 사야 한다. 2016년 올림픽 때까지 선수 1인당 30억~40억원은 든다. 대기업 지원 없이는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승마단을 전폭 지원해 장애물 비월 단체전 9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경험이 있다. 승마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올림픽에 출전시켜야겠다고 판단되면 협회의 사업으로 편성해 예산을 배정한 뒤 선수들을 지원할 수 있다. 이때 회장사가 돈을 대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 이영국 상무는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삼성전자가 국제승마협회와 함께 삼성네이션스컵을 개최했을 때 내가 담당자여서 국제승마협회에 인맥이 있다. 한화 쪽에서 승마협회의 국제화에 도움을 달라고 해 개인적으로 부회장 직을 수락한 것이다. 그룹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차기 회장직을 삼성에서 맡을지 여부에 대해선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김원철 김외현 하어영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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