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정점…한달새 10% 줄어
40달러대 머물자 채산 안맞아
국제유가 바닥쳤다는 해석도
설비 줄며 건설·조선·철강 울상
한국, 강관수출 미국 쏠려 타격
40달러대 머물자 채산 안맞아
국제유가 바닥쳤다는 해석도
설비 줄며 건설·조선·철강 울상
한국, 강관수출 미국 쏠려 타격
미국에서 가동중인 유전 시추기 숫자가 향후 국제 유가의 척도이며, 이 숫자의 변동에 한국의 조선·건설·철강산업도 함께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는 자못 흥미로운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셰일오일에 대응해 ‘감산불가’로 맞불을 놓아 유가를 떨어뜨리는 ‘치킨게임’을 벌이는 와중인 만큼 미국 셰일 시추기 수의 변화가 곧 향후 유가 흐름을 가리키는 선행지표라는 것이다.
■ 시추공 숫자로 본 유가 전망
전세계 경제의 이목이 저유가 현상에 쏠려 있는 가운데 요즘 석유 관련 사업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데이터가 미국내 원유·가스 시추기 숫자의 흐름이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을 추정해볼 수 있는 기초자료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시추 활동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국 휴스턴의 유전정보 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지난 9일 현재 미국에서 채굴 활동을 진행 중인 셰일석유·가스 시추기인 리그(rig·육상+해상) 가동대수는 총 1750개다. 이 중에서 석유 시추기는 1421개로, 지난해 12월5일 이후 한달만에 154개나 줄었다. 지난해 2월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국제유가가 40달러대에 머무르자 채산성을 맞추지 못한 미국내 셰일업체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은행은 향후 12개월~19개월에 걸쳐 전 세계 유전 시추기가 15~20% 정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내 시추기 감소는 국제유가를 떨어뜨려 셰일오일의 경제성을 무너뜨리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견제·압박 카드가 먹혀들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나이미 석유장관은 최근 “유가가 20달러로 하락해도 오펙은 아무 상관없다”며 생산감축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나아가 미국내 셰일오일 시추기가 빠르게 줄면서 국제유가가 바닥을 쳤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22일 내놓은 ‘유가급락’ 보고서에서 “사우디의 재정 균형을 위한 적정 유가는 89달러로 추정된다”며 “오펙 회원국의 재정 타격으로 치킨게임이 1년 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추공 숫자와 국내 산업
미국의 셰일붐 둔화에 따른 시추기 감소는 철강산업의 원유 유정 및 수송용 강관과 조선용 후판은 물론 에너지 관련 건설·조선업종에도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유가로 현금흐름이 악화된 오일 메이저마다 신규 설비투자를 축소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빠져든 산유국도 원유 프로젝트를 대거 지연·취소하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는 올해 북미 에너지석유 업체들의 자본지출이 지난해 대비 20~25%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전세계 400개 대형 유전·가스전을 살펴본 결과 브렌트유가 배럴당 70달러에 머물 경우 총 9300억달러(750만 배럴) 규모의 유전관련 신규 투자가 수익성이 없어 무산될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추산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최부식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강관 수출의 72%가 미국으로 향하는 등 대미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저유가로 셰일가스 사업이 부진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시추 활동이 축소되면서 유정 강관의 경우 수요와 가격의 동시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디트 스위스은행은 강관 가격이 향후 최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셰브론이 캐나다 북극해 유전 시추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고비용 심해유전 개발 프로젝트도 투자가 지연·축소되면서 건설업종의 해양플랜트 제작시장도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해양플랜트와 엘엔지(LNG)선 및 엘피지(LPG)선의 발주 연기 및 감소로 조선업도 위축되고, 이는 다시 철강산업으로 번져 조선용 후판 수요를 떨어뜨리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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