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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뉴질랜드 FTA 타결’에 기대했는데…더 속만 타는 ‘한류 사업자’

등록 2015-01-25 20:24수정 2015-01-25 22:24

콘텐츠 불법서비스 ‘TV패드’ 이용
뉴질랜드 시청자 한류 무료로 봐도
현지 저작권법 부실해 처벌 어려워
한-뉴 FTA, 당사국 법령 따른다는 수준
“한-호주 수준 강화를” 의견서 내자
산업부 “협정문 번역 의견만 받아”
“한국 생방송 티브이패드(TVpad)로 신청하세요. 일반 티브이를 스마트 티브이로 만들어줍니다.”

옥션·아마존 등 국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200~300달러만 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티브이패드’를 선전하는 광고다. 가로세로 10㎝ 크기의 셋톱박스를 산 뒤 일단 텔레비전에 연결하면 별도 시청료 없이 한국·중국·일본 등의 방송을 전세계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주문형 비디오(VOD) 방식으로도 드라마 등을 돈 한푼 내지 않고 볼 수 있다. 주로 중국계 업체들이 이런 전자장비를 만들어서 세계 곳곳에 판 뒤 국외에 서버를 두고 인기가 많은 ‘한류’ 콘텐츠 등을 불법 또는 편법으로 무료 서비스한다. 한류 열풍 때문에 한국 인기 드라마 등은 대개 일주일이면 중국어 등 외국어 자막까지 곁들여 서비스된다.

뉴질랜드에서 4년째 한류 콘텐츠 사업을 하는 이아무개(56)씨는 이런 중국계 티브이패드 업자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간다. 뉴질랜드는 뉴스를 뺀 거의 모든 방송 콘텐츠를 외국에서 사들이는 상황이라서 한류 콘텐츠의 사업성이 큰 곳이다. 하지만 티브이패드 업자들 탓에 정당한 저작권을 토대로 한 한류 사업은 설 자리가 크게 위축됐다. 뉴질랜드 시청자들이 ‘올레티브이’ 같은 현지 인터넷티브이(IPTV)를 통해 시청료를 주고 한류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셋톱박스를 사서 무료로 콘텐츠를 본다. 뉴질랜드는 빠르게 진화하는 정보기술을 지식재산권 보호법에 반영하지 않아 이런 행태를 형사처벌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소식은 이씨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뉴질랜드 이웃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한국의 자유무역협정 지재권 보호 조항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이 호주와 비슷한 수준의 협정을 뉴질랜드와도 맺는다면 뉴질랜드 현행법이 강화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씨의 기대는 깨졌다. 지난달 22일 한-뉴 협정의 가서명이 이뤄졌고, 이달 5일 협정문의 국문본 초안이 공개됐다. 협정문의 지재권 조항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확인했을 뿐, 침해 구제 방법으로 ‘양 당사국의 법령’에 따라 절차를 밟도록 한다는 수준이었다. 이씨는 “이미 경찰에 신고를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려우니 민사소송을 해보란 조언을 받았다”며 “승소한들 불법업자의 재산 은닉과 사업 명의 갈아타기로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현행법은 ‘방송 파일 내려받기’ 같은 옛날 방식이나 규제할 뿐 최근 유행하는 셋톱박스 방식 등은 규제하지 못한다.

이씨는 한-뉴 협정문 지재권 조항을 한-호주 협정 수준으로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한-뉴 협정문 국문본 공개와 함께 24일까지 국민 의견을 접수한다는 보도자료를 내자, 이씨는 이런 현지 사정을 알리는 자료와 함께 의견서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그러나 산업부의 답신은 이씨의 의견 접수가 ‘헛된 메아리’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산업부는 이씨에게 “지금은 한글 번역본이 제대로 번역됐는지 의견을 접수하는 단계”라며 “현 단계에서는 (협정) 내용을 수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을 보냈다. 실제 산업부 관계자는 “24일까지 이뤄진 의견 접수는 한글 번역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통상절차법은 국민이 언제든 통상 협상이나 조약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고 정부는 이의 반영에 노력하도록 규정했지만, 협정문 공개 뒤 국민이 의견을 내어 반영할 길은 실질적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이씨는 “협정문 공개 이전엔 협상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는데, 국민은 번역 문제만 의견을 내라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한-중 자유무역협정도 조만간 가서명을 할 텐데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탄식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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