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어느 가정집 안에서 혼자 사는 한 여성 노인이 연탄 쌓아두는 곳 앞에 앉아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의 ‘복지 자연 증가론’ 허와 실
정부가 “지금의 복지제도를 유지만 해도 2040년이면 한국의 복지지출이 선진국 수준까지 갈 것”이라는 요지의 ‘복지 자연증가론’을 꺼내들어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까지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복지 확대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가 자연증가론으로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이런 정부의 주장에 대해 “그럼 앞으로 25년 동안 사회양극화와 노인빈곤은 방치하자는 것이냐”며 정부가 무책임하고 안일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현재 복지제도만으로도 2040년이면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수준으로 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고복지’가 되도록 이미 스타트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 최 부총리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복지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되풀이하고 있는 주장이다.
정부 “OECD 평균 될 것”이라지만
연금·의료비 중심 지출 늘어날 뿐
실업·아동·교육 등 구멍 많아
2030년에도 국민연금 수급자는
전체 노인 10명 중 4명에 그쳐
노인 빈곤율 48.5%·자살률 1위
“25년간 이들에게 참으라는 건가”
2040년이면 65세 인구비중 32%
복지지출 40%는 돼야 선진국 수준
■ “가만 놔둬도 2040년엔 복지선진국?” 지난해 사회보장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만든 사회보장위원회가 장기재정추계를 내면서 ‘복지 자연증가론’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금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했을 때, 201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9.8%이던 복지지출이 2040년엔 22.6%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이시디의 평균 복지지출이 지디피 대비 22.1%(2009년 기준)이기 때문에, 이 추계에 따르면 25년 뒤에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과 비슷해진다는 것이 자연증가론의 요지다. 정부는 이를 위해 ‘어린이-어른’ 비유를 끌어들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금 등 복지제도 도입이 오이시디 국가보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나 늦었다.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복지규모를 비교하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체중을 비교하면서 어린이 몸무게가 적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노인인구가 늘면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의료비 등을 중심으로 복지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9~2009년 복지지출 증가율을 보면 오이시디 평균은 6.6%인 데 반해 우리는 11.7%였다. ■ 25년 동안은 노인빈곤·양극화 어떻게 하나? 노인인구가 증가하면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하니, 추가적인 복지 확대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발상은 정책 당국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최경환 부총리는 2040년이 아닌 2015년의 부총리다. 현재 복지지출이 너무 작아 노인들과 아동, 빈곤층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에게 25년 동안 참으라는 얘기냐”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복지 회피용 변명이 아니라 복지재정 확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는데, 연금제도 등 노후 복지체계가 늦게 도입된 탓이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5%(중위소득 50% 미만 소득자 비율)로 오이시디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다. 오이시디 평균(12.4%)보다 3배 이상 많다. 노인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81.9명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는 “복지가 확충된 나라를 보면 1차적으로 노인빈곤을 해결했다. 그게 1950~60년대 일이다. 우리는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경제 여건까지 좋지 않아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시급히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도 있어도 사각지대 너무 넓어 우리나라는 공공부조(기초생활수급제도), 국민연금·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 등 복지제도 자체가 갖춰져 있지만 사각지대가 너무 넓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명 안팎인데, 실제로는 빈곤층이지만 기초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 ‘사각지대 빈곤층’은 4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연금료 부담으로 가입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가입자(자영업자) 844만명 중 경제사정 등으로 연금을 내지 못하는 납부예외자가 54.1%(457만명)나 된다. 자영업자 2명 중 1명은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607만7000명)도 38.4%(233만3500명)만 가입해 있다. 이런 이유로 2030년이 돼도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전체 노인 10명 중 4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능후 경기대 교수(사회복지)는 “20~30년 뒤에도 사각지대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국민연금 전체 액수는 늘겠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져 연금을 낼 수 있었던 사람만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 뒤처진 복지분야는 어떻게? 복지지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연금과 의료비 중심이어서, 실업, 아동, 교육 등 제도 자체가 아예 뒤처져 있는 복지 분야는 ‘구멍’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인 ‘건강보험 보장률’이 62.5%(2012년 기준)로 오이시디 평균(약 80%)보다 크게 낮다. 국민들이 자기 돈으로 내야 하는 의료비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전체 의료비 지출은 늘겠지만, 제도 자체를 고쳐 보장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민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동수당 등이 없어 아동·가족 복지지출도 오이시디 34개 회원국 중 32위다. 실업급여가 너무 작아(상한액 하루 4만3000원)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유지가 어렵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는 “현재 취약한 복지 분야가 많다. 정부 수장이라면 장기적인 복지정책을 말할 때 빈곤층을 위해서 어떤 정책을 해야 하고, 건강보험 비급여는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고령화율 더 높은 것은 안 보나 정부 추계로도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가 2040년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 복지지출 22%는 선진국에서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살 이상 차지하는 비율)이 약 15%일 때의 복지지출 규모다. 2040년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32.3%다. 이미 복지지출 22%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선진국 수준의 복지라면 고령화율이 32.3%일 경우 복지지출이 약 40%까지 올라야 한다”며 “현재 복지제도를 유지했을 때 2040년 22.6%라는 장기추계 결과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박수지 기자 dandy@hani.co.kr
연금·의료비 중심 지출 늘어날 뿐
실업·아동·교육 등 구멍 많아
2030년에도 국민연금 수급자는
전체 노인 10명 중 4명에 그쳐
노인 빈곤율 48.5%·자살률 1위
“25년간 이들에게 참으라는 건가”
2040년이면 65세 인구비중 32%
복지지출 40%는 돼야 선진국 수준
■ “가만 놔둬도 2040년엔 복지선진국?” 지난해 사회보장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만든 사회보장위원회가 장기재정추계를 내면서 ‘복지 자연증가론’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금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했을 때, 201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9.8%이던 복지지출이 2040년엔 22.6%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이시디의 평균 복지지출이 지디피 대비 22.1%(2009년 기준)이기 때문에, 이 추계에 따르면 25년 뒤에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과 비슷해진다는 것이 자연증가론의 요지다. 정부는 이를 위해 ‘어린이-어른’ 비유를 끌어들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금 등 복지제도 도입이 오이시디 국가보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나 늦었다.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복지규모를 비교하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체중을 비교하면서 어린이 몸무게가 적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노인인구가 늘면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의료비 등을 중심으로 복지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9~2009년 복지지출 증가율을 보면 오이시디 평균은 6.6%인 데 반해 우리는 11.7%였다. ■ 25년 동안은 노인빈곤·양극화 어떻게 하나? 노인인구가 증가하면 복지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하니, 추가적인 복지 확대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발상은 정책 당국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최경환 부총리는 2040년이 아닌 2015년의 부총리다. 현재 복지지출이 너무 작아 노인들과 아동, 빈곤층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에게 25년 동안 참으라는 얘기냐”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복지 회피용 변명이 아니라 복지재정 확충”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는데, 연금제도 등 노후 복지체계가 늦게 도입된 탓이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빈곤율은 48.5%(중위소득 50% 미만 소득자 비율)로 오이시디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다. 오이시디 평균(12.4%)보다 3배 이상 많다. 노인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81.9명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는 “복지가 확충된 나라를 보면 1차적으로 노인빈곤을 해결했다. 그게 1950~60년대 일이다. 우리는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경제 여건까지 좋지 않아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시급히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도 있어도 사각지대 너무 넓어 우리나라는 공공부조(기초생활수급제도), 국민연금·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 등 복지제도 자체가 갖춰져 있지만 사각지대가 너무 넓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는 130만명 안팎인데, 실제로는 빈곤층이지만 기초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 ‘사각지대 빈곤층’은 4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연금료 부담으로 가입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가입자(자영업자) 844만명 중 경제사정 등으로 연금을 내지 못하는 납부예외자가 54.1%(457만명)나 된다. 자영업자 2명 중 1명은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607만7000명)도 38.4%(233만3500명)만 가입해 있다. 이런 이유로 2030년이 돼도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전체 노인 10명 중 4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능후 경기대 교수(사회복지)는 “20~30년 뒤에도 사각지대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국민연금 전체 액수는 늘겠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져 연금을 낼 수 있었던 사람만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 뒤처진 복지분야는 어떻게? 복지지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연금과 의료비 중심이어서, 실업, 아동, 교육 등 제도 자체가 아예 뒤처져 있는 복지 분야는 ‘구멍’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인 ‘건강보험 보장률’이 62.5%(2012년 기준)로 오이시디 평균(약 80%)보다 크게 낮다. 국민들이 자기 돈으로 내야 하는 의료비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전체 의료비 지출은 늘겠지만, 제도 자체를 고쳐 보장률을 높이지 않으면 국민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동수당 등이 없어 아동·가족 복지지출도 오이시디 34개 회원국 중 32위다. 실업급여가 너무 작아(상한액 하루 4만3000원)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유지가 어렵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는 “현재 취약한 복지 분야가 많다. 정부 수장이라면 장기적인 복지정책을 말할 때 빈곤층을 위해서 어떤 정책을 해야 하고, 건강보험 비급여는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고령화율 더 높은 것은 안 보나 정부 추계로도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가 2040년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 복지지출 22%는 선진국에서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살 이상 차지하는 비율)이 약 15%일 때의 복지지출 규모다. 2040년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32.3%다. 이미 복지지출 22%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선진국 수준의 복지라면 고령화율이 32.3%일 경우 복지지출이 약 40%까지 올라야 한다”며 “현재 복지제도를 유지했을 때 2040년 22.6%라는 장기추계 결과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박수지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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