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5년 재정정책자문회의에서 발언 도중 목청을 가다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재정 지출 구조조정 왜?
복지수요 급속히 느는데 재정부족
세수확충 사회적 공감대에 ‘찬물’
예산비중 큰 ‘복지’ 칼질 불가피
복지수요 급속히 느는데 재정부족
세수확충 사회적 공감대에 ‘찬물’
예산비중 큰 ‘복지’ 칼질 불가피
정부가 1일 복지사업을 포함해 대대적인 지출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늘어나는 복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세수를 확충하기보다, 기존 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부정수급 근절, 유사·중복사업 통폐합, 성과가 미흡한 사업 축소 등 이날 발표된 재정개혁 방안은 언뜻 보면 그동안 정부가 강조하던 내용이다. 하지만 주목해서 볼 것은 정부가 내년 예산과 5년 동안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총리와 부총리가 동시에 재정개혁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증세 등 세수확충과 복지지출 문제는 뜨거운 쟁점이었다. 고령화·저출산 등으로 복지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원이 부족하자 정부는 담뱃세를 올리고, 근로소득세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꿨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세수확충 방식을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지방교육청이 부족한 재원 탓에 누리과정(만 3~5살 보육지원)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며 중앙정부와 대립한 것도 복지재정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세수를 확충해 재원을 늘릴 것인지, 정부 지출을 먼저 줄여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정치권에서는 증세와 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만들자는 데 여야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재정개혁 발표로 정부는 세수확충보다는 ‘지출 구조조정’에 무게중심을 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언급하고 있지만 복지가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복지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 375조4000억원 중 115조7000억원(30.8%)을 차지하는 등 가장 덩치가 크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그동안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연구·개발(R&D), 방위사업을 줄이겠다면 대찬성이다. 하지만 이번 재정개혁은 복지 확대에 맞서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부정수급 근절 등은 최근 4~5년 동안 강도 높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최종적으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감축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재정확충을 위해 증세와 지출 구조조정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세수확충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재정 운용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도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태우겠다(확대하겠다)”며 올해 20조원의 예산을 늘렸다. 올해도 경기부양을 위해 규제완화, 구조개혁, 공적자금을 풀고 있는 만큼, 내년 예산을 크게 확대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기재부 관계는 “재정 상황이 어려운데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늘려야 해 정부로서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써야 할 곳은 많은데 정부 재정 상태는 매우 나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감세로 세수 기반이 약화된데다, 경기가 좋지 않아 3년 동안 세입 예산보다 덜 걷힌 세수만 22조2000억원에 이른다. 올해도 또다시 세수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증세 대신 지출 구조조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지출 구조조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시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며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등을 통해 50조7000억원을 확보하고, 지출 구조조정으로 84조1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3년째 강도 높게 하고 있지만 세출 구조조정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정부가 줄이겠다고 누차 강조했던 사회간접자본 예산도 올해 오히려 4.7%나 증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약가계부상 세출 구조조정이 얼마나 달성됐는지 여부는 따로 계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포기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노후에 대한 부담으로 국민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의 조세부담률을 유지하면서 고령화로 급속히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선진국들은 바보라서 세출 구조조정으로 대처하지 않고 국민에게 부담을 늘렸겠느냐. 증세 등 세수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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