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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봄철 주꾸미’ 귀하신 몸…씨가 마를라

등록 2015-04-05 14:08수정 2015-04-05 15:02

주꾸미 산지 보령 대천항을 가다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 자리한 보령수협 위판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양의 주꾸미가 올라오는 곳 중 하나다. 지난달 27일 주꾸미 경매를 구경하러 아침 일찍 이곳을 찾았다. 한창 제철인 만큼 장관을 기대했지만 경매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날 오전 8시 경매에 올라온 주꾸미는 185㎏이 전부, 작은 수조 하나를 겨우 채울 정도의 양이었다. 여느 때는 8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경매가 이뤄지지만 이날은 물량이 없어 나머지 오전 경매가 모두 취소됐다.

물때가 많이 잡힐 시기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오르는 법. 이날 경매가는 1㎏에 3만1850원을 찍었다. 운임과 유통마진 등을 더하면 서울의 소비자들은 1㎏당 4만원 가까이 치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급 횟감 생선 못지않은 가격이다. 보령수협 경매에 참여하는 중매인 이주성씨는 “올해 산지 경매가는 최고 3만8000원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4만4000원까지도 찍었다”고 말했다.

주꾸미가 예전부터 이렇게 귀한 것은 아니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주꾸미 생산량은 4000~5000톤 수준이었다. 2010년부터 뭔가 문제가 생겼다. 그해 주꾸미 생산량은 2977톤으로 2000년대 이후 처음으로 3000톤 밑으로 떨어졌다. 2012년에 3415톤까지 회복했지만 그해뿐이었다. 2013년에는 사상 최소인 2340톤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2530톤에 그쳤다. 올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소비자가격 1㎏ 4만원까지
고급 횟감 생선 못지않게 비싸
2010년부터 어획량 급감, 회복 안돼
“수요많다고 마구 잡아버렸기 때문”
어민은 낚시꾼 탓, 낚시꾼은 어민 탓
주꾸미 금어기 설정 지연
봄철 꽉 찬 알 인기가 남획 불러
대형마트에는 값싼 외국산 밀물

주꾸미가 제철이다. 지난달 27일 이마트 수산물 담당 바이어들과 보령수협 중매인 등이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잡아올린 주꾸미들을 살펴보고 있다. 해마다 5000톤 안팎씩 잡히던 국내산 주꾸미는 이제 그 절반 수준밖에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꾸미 가격은 산지 경매가 기준 1㎏당 3만원을 훌쩍 넘는다. 어지간한 고급 횟감 생선 못지않은 수준이다.  유신재 기자
주꾸미가 제철이다. 지난달 27일 이마트 수산물 담당 바이어들과 보령수협 중매인 등이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잡아올린 주꾸미들을 살펴보고 있다. 해마다 5000톤 안팎씩 잡히던 국내산 주꾸미는 이제 그 절반 수준밖에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꾸미 가격은 산지 경매가 기준 1㎏당 3만원을 훌쩍 넘는다. 어지간한 고급 횟감 생선 못지않은 수준이다. 유신재 기자

벌써 5년 이상 주꾸미 어획량이 신통치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미 너무 많이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남서해수산연구소 이선길 박사는 “몇년 전부터 주꾸미가 갑자기 줄었다. 해양오염 등의 요인도 있겠지만, (주꾸미가 서식하는) 연안 쪽은 해양오염의 영향이 그렇게 급격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워낙 많이 잡아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한 수산물 유통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좀 유난스러운 사람들만 봄 주꾸미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근래 들어 제철 음식을 찾아 먹는 식도락이 크게 늘었다. 수요가 받쳐주니까 잡히는 대로 다 잡는 악순환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서해안의 어민들은 낚시꾼들을 탓한다. 5~6월 산란기를 지나 알에서 부화된 주꾸미 치어들이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하는 8월부터 10월까지 서해안에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주꾸미들이 워낙 먹성이 좋을 때라 쉽게 손맛을 볼 수 있다. 다른 생선들을 잡으려면 배를 타고 제법 멀리까지 나가야 하지만 주꾸미는 연안에 붙어 있다. 적은 연료비로 낚시꾼들을 태워 영업을 할 수 있으니까 선주로서도 손쉬운 돈벌이가 된다.

약간 과장도 섞였겠지만 어민들은 낚시꾼 한 명이 와서 하루에 주꾸미를 50㎏까지 잡아간다고 말한다. 살이 통통 오른 봄철 주꾸미는 10~15마리면 1㎏이 훌쩍 넘어간다. 반면 아직 덜 자란 가을 주꾸미는 30마리가 넘어야 1㎏에 이른다. 그만큼 낚시꾼들이 주꾸미 개체수 감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생계가 걸린 것도 아니면서 취미로 어린 주꾸미를 가득 잡아가는 낚시꾼들을 어민들이 원망하는 것은 그럴 법해 보인다. 하지만 주꾸미 개체수 감소의 책임을 오롯이 낚시꾼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꾸미의 비극은 ‘봄’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바다 생물은 가을 또는 겨울이 제철로 여겨진다. 주꾸미처럼 봄에 인기 있는 수산물은 드물다. 대부분의 바다 생물은 봄에 알을 밴다. 주꾸미도 마찬가지다. 3~4월이면 머리 위쪽에 밥알처럼 생긴 알이 가득 찬다. 이 알의 식감 때문에 식도락가들이 봄에 주꾸미를 찾고, 어민들은 3월부터 5월 중순까지 주꾸미를 잡는다. 주꾸미는 연중 내내 잡을 수 있지만 어민들은 알이 없는 주꾸미는 잡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살이 빠른 사리에는 ‘뺑뺑이’ 혹은 ‘안강망’이라고 불리는 그물이 물살에 휩쓸린 주꾸미를 쓸어담고, 바닷속이 잔잔한 조금에는 고둥이나 소라 등의 껍데기를 줄에 묶어 만든 ‘소라방’이 산란처를 찾는 암주꾸미들을 끌어온다. 번식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남서해수산연구소 김영애 연구관은 “주꾸미가 소라나 고둥 껍데기에 들어가는 건 알을 낳기 위해서다. 그렇게 들어간 주꾸미를 싹 다 잡아서 축제를 열고 있으니 개체수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말했다.

김상민 이마트 수산물 담당 바이어는 “일반적으로 생선은 봄철에는 알에 영양이 집중되기 때문에 살은 맛이 떨어진다. 산란기가 지나고 가을과 겨울에 살에 기름이 오를 때가 맛이 있다. 하지만 주꾸미는 알이 인기가 있다는 게 문제다. 주꾸미도 그렇고 꽃게도 그렇고 소비자들이 알을 좋아하는 품목이 위기에 처하기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어민들도 더이상 주꾸미를 마냥 잡아서는 안 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대천항의 어민들은 올해 처음으로 주꾸미를 잡는 그물을 어선 1척당 35틀로 제한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20틀로 더 줄일 계획이다. 이런 합의를 이끌어낸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민들의 자율적인 규제일 뿐이어서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다.

더 확실하게 주꾸미를 보호하려면 일정 기간 어획을 아예 금지하는 금어기를 설정해야 한다. 금어기를 설정하려면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이미 몇 해 전부터 해양수산부와 충청남도 등을 중심으로 주꾸미 금어기 설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어민들과 낚시단체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은 낚시꾼들이 주꾸미를 잡는 여름부터 금어기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낚시인들은 알이 꽉 찬 주꾸미만 잡는 어민들부터 규제해야 한다고 받아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어민들과 낚시인들 사이 입장차가 워낙 커서 금어기 설정 논의가 몇 년째 번번이 무산됐다. 사실 금어기 설정은 대부분 산란기를 중심으로 한다. 산란기 이후 여름부터 금어기를 설정하자는 어민들의 주장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5월 초순부터 9월 말까지를 주꾸미 금어기로 설정하는 정부안을 만들어서 입장차를 조정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 서해안 어민 대표들이 방문했을 때 넌지시 이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펄쩍 뛰었다. 해수부가 어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부서인 만큼 어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는 힘들다.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

주꾸미 금어기 설정이 계속 지연되는 동안 주꾸미 어획량은 줄고 값은 올랐다. 지난달 이마트는 국내산 주꾸미를 100g당 2880원에, 롯데마트는 2980원에 판매하는 특별행사를 벌였다. 하지만 두 대형마트 모두 10톤 규모의 물량으로 일주일가량 판매하는 데 그쳤다. 산지 경매가보다 싼 가격을 그 이상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대형마트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수입 주꾸미를 선보이고 있다. 베트남산 냉동 주꾸미는 어느 대형마트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이마트는 타이에서 항공편으로 실어온 생물 주꾸미를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의 항공 직송 주꾸미 가격은 100g당 940원이다. 국내산 주꾸미 특별행사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상민 이마트 바이어는 “우리 소비자들이 국내산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면 수요가 떨어진다. 산지 경매가 기준으로 100g당 25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지만 요즘 잡히는 물량으로는 불가능한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보령/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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