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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간편 가정식’ 중소업체가 파키스탄 드나드는 이유

등록 2015-04-08 20:13수정 2015-04-08 21:33

서정쿠킹 서정옥 회장
서정쿠킹 서정옥 회장
[경제와 사람] 서정쿠킹 서정옥 회장
1987년 11월 29일 버마 근해 상공에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폭파시킨 대한항공 858편에 남편이 타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출장을 마치고 아내와 열살, 아홉살 난 두 아들이 기다리는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결혼과 함께 고등학교 가정 과목 교사직을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살아온 아내는 졸지에 가장이 됐다.

막막해하는 그에게 가까운 이웃들이 집에서 요리를 가르쳐보라고 권했다. “할 줄 아는 게 요리하고 살림하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서정쿠킹이라는 회사를 세운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이때부터 서정옥(64·사진) 회장의 요리 실력은 주변에서 알아줬다. 서울 잠실 아파트의 작은 주방이 요리교실이 됐다. 처음에는 가까운 이웃들이 서씨를 도와주자는 뜻으로 수강생을 자처했지만, 한식·일식·중식·양식·제과·제빵을 모두 배울 수 있는 요리교실이 강남의 주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한 반에 다섯 명씩 세 반을 운영했는데, 몇 년씩 기다려야 자리가 났다. 두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자 서씨는 상가 건물을 빌려 ‘서정쿠킹아카데미’라는 제대로 된 요리교실을 차렸다.

87년 KAL기 폭파로 남편 잃고
주변 권유로 요리교실 시작
간편가정식 전문업체로 성장

“국외 농업자원의 보고가 되길”
비옥한 펀자브 지역 농장 개발 꿈
24만평 100년간 임차계약 일궈

사업은 계속 커졌다. 1998년 경기 성남 삼성플라자(지금의 AK플라자) 백화점 지하 반찬가게를 인수했다. 요리 속도가 판매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60평 규모의 공장을 마련했다. 반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과 스파게티, 라자냐, 식혜 등을 냉동포장해 판매했다. 우리나라 간편가정식(HMR)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2008년에는 경기 이천에 600여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국, 탕, 소스, 음료 등 서정쿠킹의 제품들은 ‘서정옥의 느린부엌’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형 유통업체에 몇 년째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1998년 서정쿠킹이 간편가정식을 제조하기 시작할 때와 달리 이제는 대부분의 식품 대기업들이 간편가정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품질은 낮아졌다는 게 서 회장의 생각이다. “지금 간편가정식이 너무 ‘싸구려’가 돼버렸어요. ‘싸구려’ 경연대회라도 하는 것 같아. 우리 제품은 좀 비싸요. 비싸야 옳게 만들 수 있거든요.”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에 맞서기 위해 서정쿠킹은 기존에 개발한 100여종의 제품 가운데 식혜와 사골곰탕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싸도 제대로 만들었다는 것을 소비자들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식혜는 효소를 쓰지 않고 엿기름을 이용해 전통 방식대로 만든다. “멸균처리를 하면 상온 유통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맛이 떨어져요. 지금 대형마트에서 냉장판매되는 식혜는 우리 제품 밖에 없어요.” 사골곰탕도 가마솥 방식을 고수한다. 끓이는 동안 기름을 계속 걷어낸다.

‘좀 비싸고 느리지만 옳게’ 만드는 제품을 찾아주는 소비자들이 고맙지만, 서 회장은 “조그마한 내수시장에서 거대한 식품제조회사와 경쟁을 하고, 또 거대한 유통회사의 조건을 다 맞추면서 중소업체가 안정적으로 성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무수히 느낀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대기업들도 상상하기 힘든 큰 생각을 해왔다. 비옥하기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 농장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농축산물을 길러 가공, 수출하면 한식 세계화는 물론 식량안보도 든든히 할 수 있다는 게 서 회장의 생각이다. 할랄 인증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생산된 식품이라면 훨씬 수월하다. 테러 위험 때문에 다들 피하는 파키스탄을 지난 5년 동안 20번이나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해 말 파키스탄의 국립 농업대학으로부터 농장 24만평을 이익공유임차방식으로 100년 동안 이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서 회장은 요즘 이곳에 함께 진출할 투자자를 찾느라 분주하다. 서 회장은 “훗날 누군가 우리가 파키스탄에서 땀흘려 이뤄낸 결과물을 고마운 마음으로 수확하기를, 파키스탄이 우리나라 해외농업자원의 보고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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