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과 구조조정이 이어지던 동국제강·포스코·두산이 전·현직 고위 경영진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맞물리면서 ‘내우외환’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장 다급한 곳은 동국제강이다. 22일 새벽 5시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한 장세주(62) 동국제강 회장은 2004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검찰청사 앞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장 회장은 회삿돈 200여억원을 빼돌려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 등에서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를 받고 있다. 장 회장은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19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주 안에 장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창립 60돌 한달 전인 지난해 6월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는 처지다. 세계 경기 침체에 더해 중국산 저가 철강이 범람하면서 업황 전망이 어둡다. 지난해에 204억원의 영업손실(연결기준)을 봤으며, 신용등급도 하락 추세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0일 동국제강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춘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도 이미 한 차례 등급 하락을 겪었던 터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업평가는 “후판 부문의 실적 저하에 따른 수익성과 영업현금창출력 약화 지속, 국내외 대규모 투자로 인한 과중한 재무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재무개선과 사업 구조조정 등 경영진의 발빠른 대처가 급한 상황에서 대주주 경영진이 비리와 개인 일탈로 검찰수사 부담까지 짊어지게 한 셈이다.
박용성(75) 두산중공업 회장은 중앙대학교 이사장으로 대학에 기업식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각종 갈등을 양산하고 막말 전자우편 파문까지 일으킨 끝에 대학 이사장직뿐 아니라 중공업 회장직 등 모든 공적 직함을 내놓았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중앙대 관련 민원을 들어주고 두산그룹으로부터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중앙대와 두산그룹의 연결고리인 박 회장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두산 쪽은 박용성 회장이 물러나도 해당 기업의 경영엔 차질이 없다고 해명한다. 박 회장은 그동안 중앙대 일에 매진했고, 실무는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맡았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재무구조개선 부담 등으로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가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할 만큼 위기의식을 강조했던 처지다. 박 회장이 전면 퇴진을 결정한 것은 이런 와중에 두산그룹 전반에 검찰 수사 불똥이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준양 포스코그룹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다음주께 정 전 회장의 측근인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정 전 회장은 2009년부터 5년 재임기간 동안 정치권의 요구로 부실한 기업을 고가로 매입하는 등 무리한 외형 확장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의 포스코는 포스화인, 포스코특수강 등 비핵심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등 체질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1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결기준 매출액은 15조100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줄고 영업이익은 7312억원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포스코플랜텍이나 포스코건설 등 계열사 실적 부진에 따른 결과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최근 ‘내우외환’ 기업들과 관련해 “대주주 일가이거나 외부 낙하산으로 선임된 최고위 경영진이 무리한 의사 결정을 한다든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기업 내에서 전혀 제어가 되지 않다가 법적인 문제로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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