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5일 오후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건물에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실에서 열린 비공개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김윤규 부회장 해임을 결의한 뒤 관련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안팎서 감사보고서 신빙성 논란
현대그룹이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공식 퇴출시켰다. 현대아산은 5일 오후 서울 적선동 현대빌딩 회의실에서 현정은 그룹회장, 윤만준 사장, 심재원 부사장 등 3명의 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김윤규 부회장 해임을 결의했다. 또 다음달 22일 임시주총을 소집해 김 부회장의 등기이사직 해임안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현대는 보도자료에서 “김 부회장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종 개인비리와 직권남용, 독단적 업무처리 등으로 회사와 사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고 해임 사유를 설명했다. 현대아산은 지난 8월19일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직을 내놓게 한 뒤 한달 보름여 만에 부회장직까지 박탈했다. 이로써 김 부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36년 동안 몸담아 온 현대와의 공식 인연을 완전히 끊게 됐다. 현대그룹은 지금까지 대표이사급 최고경영자에게는 이사 자격을 상실하더라도 최소 6개월 동안 직함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경우 “대표이사 해임 이후 계속 바깥을 돌아다니며 적절하지 못한 처신을 한데다 남북협력기금 유용 혐의가 적힌 내부감사보고서가 유출되는 바람에 부회장 직함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김 부회장에 대한 그룹의 이런 조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 혐의는 그룹 경영전략팀의 일방적 해석일 뿐이고, 설사 감사보고서의 비리내용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그동안 김 부회장의 대북사업 공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한 임원은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오래 전부터 현정은 회장과 김 부회장 간에 갈등이 있었다”며 “경영전략팀의 감사는 김 부회장을 퇴출시키기 위한 짜맞추기식 표적감사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아산 내부에서는 그룹의 감사를 사건 경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실감사’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관계자는 “감사보고서에서 지적된 남북경협자금 유용문제는 북쪽 사업 파트너를 통해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구체적 증거를 확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의혹 수준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김 부회장 개인비리로 못박아 결국 전체 대북사업을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또 김 부회장이 중국에서 돌아와 이사회 결정에 정면으로 반발할 경우의 ‘우려스런 상황’을 걱정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의 해명이 자칫 현대아산 대북사업 전반의 문제점을 들춰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치료차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는 김 부회장은 이달 중순께 귀국할 예정이다. 통일부의 현대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다. 통일부는 전날 “현대로부터 내부감사보고서를 넘겨받아 검토해 봤더니 논란이 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지구 도로포장공사와 관련해서는 협력기금이 투명하고 적정하게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북사업의 특수성을 거론하며 “김 부회장 퇴출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그룹 경영진들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대북사업) 다 태우는 격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순빈 이제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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