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력 해결·금융지주사 피하기
외국인 투자자 지분 32% 달해
주총까지 간다면 삼성 안심못해
삼성 “후계구도 차질 빚을라” 총력
엘리엇 주가 올려 차익 챙기기 관측
외국인 투자자 지분 32% 달해
주총까지 간다면 삼성 안심못해
삼성 “후계구도 차질 빚을라” 총력
엘리엇 주가 올려 차익 챙기기 관측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4일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계획과 관련해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고 천명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삼성의 합병작업이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엘리엇은 26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미국 월가의 억만장자인 폴 싱어가 1977년 설립했다.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를 앞세워 경영참여 요구는 물론 투자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무릅쓰는 ‘적극적 행동주의’로 유명하다. 엘리엇은 2000년 초반 이후 아르헨티나 국고채에 투자했다가 회수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현지 정부를 상대로 다른 펀드와 함께 투자금 15억달러의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또 2002년에는 삼성전자가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을 규정한 정관 규정을 삭제하는 것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한 악연도 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 대 0.35)의 불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엘리엇의 그동안 행태로 볼 때, 7월17일로 예정된 주총에서의 표결 반대, 우선매수청구권(회사가 합병 반대 주주의 주식을 되사주는 제도) 행사, 개별 소송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할 것으로 본다. 네덜란드 연기금을 포함해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도 합병비율에 불만이 크다.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시점에 합병이 결정됐다고 보는 것은 물론 삼성 쪽이 삼성물산의 상대 주가를 낮추었을 가능성에 혐의를 두기도 한다. 삼성물산 우선주의 상당량을 보유한 한 미국계 헤지펀드도 삼성물산에 우선주주들만의 별도 주총 개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주총에서의 표결 전망은 쉽지 않다. 합병 결의는 출석 주식수 3분의 2 이상과 의결권 주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삼성 총수일가와 계열사의 물산 지분은 13.65%다. 삼성 외에는 국민연금이 9.79%로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가가 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높다면 합병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최대 변수는 32%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실제 표대결까지 벌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주총에서 합병을 무산시킨 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에 맞게 합병비율을 합리적으로 재산출해서 합병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다른 쪽에서는 주총 전에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주식을 팔고 나갈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종우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면 삼성 쪽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을 매입할 수도 있다는 기대로 주가가 오르고, 이때 엘리엇이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길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되더라도 반대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매수청구권 행사액이 삼성에서 설정한 한도액인 1조5천억원을 넘으면 합병은 무산된다. 이는 현 주가 수준에서 삼성물산 지분의 약 17%에 해당한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4일 주가가 6만9500원으로, 청구권 행사가인 5만7234원을 훨씬 웃돌아, 투자자들이 주총 이후 청구권을 행사할 유인은 약하다. 주가가 이런 상태를 이어간다면 청구권 행사보다 미리 주식을 파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삼성으로서는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재용 중심의 후계구도 구축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초비상 상태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고위 임원은 “합병안이 무산되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삼성 쪽에서 엘리엇의 ‘먹튀’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내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삼성이 합병을 통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효과만 중시하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삼성이 결과적으로 합병비율이 불합리하게 산정되도록 하고, 불만을 가진 투자자들과 아무런 사전 대화 노력도 하지 않는 안이한 태도를 보인 게 근본 원인”이라며 “지금이라도 주주들을 설득하고 향후 기업 발전의 비전을 제대로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김효진 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