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조동성 교수, 송길영 부사장, 김상조 교수
재벌 대기업마다 최고경영자 등 그룹 임원들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도 하는 행사를 잇달아 열면서 ‘대기업 외부 강연자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한겨레>는 18일 삼성의 ‘수요 사장단회의’, 현대기아차의 ‘경영자 조찬회’ 등 임(직)원 대상 포럼·강의, 롯데의 ‘롯데그룹 임원 조찬포럼’, 엘지(LG)의 ‘엘지임원세미나’ 등 최고경영자·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토론)모임에 강연자로 출강한 외부 전문가 명단(2011년 이후)을 입수해 들여다보았다. 강연자는 삼성 총 206명(그룹 내부자 강연 포함), 현대차 22명, 엘지 13명, 롯데 13명이다. 에스케이(SK)는 외부 전문가 강연이 매우 드물어 제외했다.
대기업들이 ‘모시는’ 외부 전문가 강연 시장에서 활약중인 이름난 강연자는 여럿이다. 중복 출강도 흔하다. 세 차례 이상 강연자로 나선 인기 강사는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삼성·엘지·롯데 등),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삼성·현대차·롯데), 김한얼 홍익대 교수(삼성·엘지·롯데) 등이다. 빅데이터 분석전문가인 송 부사장은 2013년 초 삼성 사장단회의에 강연자로 나선 이후 요즘 가장 바쁜 강연자로 떠올랐다. 그의 유쾌한 강연 스타일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출강한 기업은 동부·한라·대림·지에스(GS)·포스코·한화·미래에셋·농심 등 20여곳에 이른다. 송 부사장은 “강연 주제와 연사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빅데이터가 비즈니스와 연결된다고 보고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개혁 논객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사실상 ‘특별 강연자’ 지위로 현대차·삼성·에스케이(최고위 임원 월례회의)의 최고경영자들 앞에 선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여느 강연자와 달리 “재벌기업의 사회적 소통”을 주문하며 아낌없이 쓴소리를 던졌다.
강연자로 두 차례 나선 사람은 여준상 동국대 교수, 서은국 연세대 교수,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이상 삼성·롯데), 김병도 서울대 교수, 허태균 고려대 교수, 이희수 한양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홍성태 한양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이상 삼성·현대차), 복거일 작가, 서희태 오케스트라 감독(이상 삼성·엘지),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 김상근 연세대 교수(이상 삼성 2회) 등이다. 주제는 경제·경영뿐 아니라 인문학·남북관계·예술·신학 등 다양하다.
강연자 선정은 어떻게 하고 강연료는 어느 정도일까?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기업의 임원은 “누구를 강연자로 부를지는 각 기업 인재개발담당자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서로 추천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고 귀띔했다. 기업체 임원들이 이런저런 기획강연에서 이미 들어본 외부 전문가 이름을 지목하면 인재개발 부서에서 섭외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 임원은 “이 바닥은 ‘누구는 얼마’ 식으로 강연자마다 시장가격이 형성돼 있다”며 “보수는 천차만별이다. 약 1시간30분 강연에 100만~200만원도 있고, 좀 많이 받는 사람은 300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형성돼 있다 보니 어느 기업이든 특정 강연자에게 주는 강연료는 엇비슷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회경제적 이슈가 변동하면서 인기 강연자 목록도 바뀐다. 예전엔 ㄱ교수가 ‘모셔오는’ 1순위였으나 언제부턴가 몸값이 다소 떨어졌으며, 최근엔 강연자 ㄴ씨가 1회 400만원 정도 받는 인기 강사로 떠올랐다. 강연료가 과분하다며 오히려 보수를 낮춰 받는 사람도 있고, 아예 안 받는 사람도 있다. 롯데 임원포럼에 출강한 차동엽 교수(인천가톨릭대 신부)는 강연료를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재벌기업에서 받는 강연료 액수가 크다 보니 강연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요청하는 ‘민감한’ 강연자도 간혹 있다. 한 기업의 부장은 “고위공무원은 자신의 출강 사실을 노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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