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인터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이은 후속 승계 계획의 상당부분이 수정·폐기되는 것을 막으려면 실추된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선결과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18일 삼성물산 합병안을 둘러싼 주주간 공방 사태의 교훈과 이재용 체제의 과제를 주제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김 소장은 “그동안 한국기업은 지분이 평균 5%에 불과한 총수일가의 소유물로 여겨졌으나 진짜 주인은 나머지 다수의 주주라는 점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은 정부가 새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주주 등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태가 정부와 국회가 지난 10년 동안 한 일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고 역사적 의미를 평했다.
김 소장은 삼성이 5월26일 합병을 발표하고, 6월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공개 지적한 이래 삼성의 사령탑인 미래전략실과 수차례 대화하고, 장기투자성향의 외국인 주주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주주간 공방의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합병안’ 찬성률 간신히 넘겨 통과
표 차이 많지 않은 것에 놀라 평균지분 5% 불과한 총수일가 아닌
다수 주주가 기업의 진짜 주인 확인 승계 완성까지 ‘기승전결’ 4단계
아직 ‘승’ 단계도 마무리 못해 이번엔 ‘애국심 마케팅’ 통했지만
경제적 이익만 고려하면 장담 못해
먼 길 가려면 신뢰 회복 시급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한 뒤 상당수 언론은 삼성이 엘리엇에 완승을 했다고 표현했는데?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참석주주의 66.67%의 찬성을 얻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69.53%를 얻었으니 불과 2.86% 많은 것이다. 힘들게 이겼다고 봐야 한다. 국내외 기관투자자 중에서 3% 정도의 지분이 있는 한 곳만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면 부결됐을 것이다. 삼성이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외국인주주와 국내 기관투자자, 소액주주를 상대로 막판까지 노력한 것을 고려하면 표 차이가 그것밖에 나지 않은 것에 놀랐다. -또 다수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이 탄력을 받아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과정은 기승전결 4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기’ 단계는 2013년 이후 사업구조 개편을 하고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에스디에스(SDS)를 상장시켜 이 부회장 보유주식의 유동성을 높인 것이다. ‘승’ 단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의 연결고리를 줄인 것이다. 이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삼성에스디에스를 삼성전자와 합쳐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이에 속한다. ‘전’ 단계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7.6%를 보유해서 생기는 금산분리 훼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결’ 단계는 그룹 전체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라는 두 지주회사 체제로 정리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합병 삼성물산을 재합병하는 방안도 구상할 수 있다. 현재는 ‘승’ 단계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전’과 ‘결’ 단계를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도 어렵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당부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후속 승계계획 추진이 어려워진다고 보는 이유는?
=지금 삼성에스디에스와 삼성전자를 합병하면 삼성물산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최근 실적둔화를 반영해 저평가되어 있다. 반면 삼성에스디에스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당연히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2%로 삼성물산의 34%보다 훨씬 많다. 외국인이 반대하는 합병은 추진할 수 없다.
-삼성도 이런 분석에 동의할까?
=주총 표 분석을 해보면 의미는 명확해진다. 삼성물산 합병안의 찬성과 반대 비율은 7대 3이었다. 하지만 엘리엇이 제안한 두번째 의안(현물배당 도입)과 세번째 의안(주총결의로도 배당 허용)은 찬성이 45%, 반대가 55% 정도였다. (두번째와 세번째 의안에선) 엘리엇 편에서 선 표가 15% 정도 많아졌다는 게 중요하다. 합병안 표결엔 주주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고려 이외에 엘리엇으로부터 삼성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 마케팅’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의안은 주주의 경제적 이익만 고려됐기 때문에, 합병안에 반대한 외국인과 소액주주 가운데 상당수가 찬성했다.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에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성공했지만, 삼성전자는 장담하기 어렵다. -엘리엇이 공격하기 이전부터 경제개혁연대 등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삼성이 합병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이 지난해 추진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일이 꼬였다.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됐다면, 삼성물산의 건설 쪽을 떼어 붙여서 건설분야 구조조정을 단행했을 것이다. 이후 나머지 삼성물산의 상사 쪽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다면 불공정성 논란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번 합병을 주도한 삼성 쪽 핵심인사들과 깊숙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아는데, 느낀 점은?
=과거 삼성이 ‘빠른 추격자’였던 시절의 성공요인으로 총수의 리더십, 미래전략실의 기획력, 각사 전문경영인의 전문성 등 이른바 ‘황금의 3각 축’이 꼽힌다. 하지만 ‘시장 선도자’가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미래전략실은 법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회와의 합법적인 소통이 어렵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이번 합병 건에서도 시장의 문제 제기자와 직접 대화를 못했다. 삼성과 대화를 원하는 홍콩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현대차의 한전부지 고가입찰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 현대차에는 개별회사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했는데, 삼성에는 그룹 차원의 개선을 요구한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법적 실체가 없고,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미래전략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사태 관련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은?
=초반에 자사주 매각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결국은 미래전략실 가신그룹의 강경론이 사태를 주도했다. 이 부회장이 총수로서 카리스마를 갖추려면 이건희 회장 때처럼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부친의 가신들과 공존해야 한다. 그런데 20년 앞을 내다보는 이 부회장과, 5년 뒤에 물러나는 가신들의 시각이 같을 수 없다. 엘리엇 사태가 발생한 뒤 미래전략실에 주총을 취소한 뒤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합병비율로 합병을 재추진하는 방안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표 차이 많지 않은 것에 놀라 평균지분 5% 불과한 총수일가 아닌
다수 주주가 기업의 진짜 주인 확인 승계 완성까지 ‘기승전결’ 4단계
아직 ‘승’ 단계도 마무리 못해 이번엔 ‘애국심 마케팅’ 통했지만
경제적 이익만 고려하면 장담 못해
먼 길 가려면 신뢰 회복 시급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한 뒤 상당수 언론은 삼성이 엘리엇에 완승을 했다고 표현했는데?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참석주주의 66.67%의 찬성을 얻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69.53%를 얻었으니 불과 2.86% 많은 것이다. 힘들게 이겼다고 봐야 한다. 국내외 기관투자자 중에서 3% 정도의 지분이 있는 한 곳만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면 부결됐을 것이다. 삼성이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외국인주주와 국내 기관투자자, 소액주주를 상대로 막판까지 노력한 것을 고려하면 표 차이가 그것밖에 나지 않은 것에 놀랐다. -또 다수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이 탄력을 받아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과정은 기승전결 4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기’ 단계는 2013년 이후 사업구조 개편을 하고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에스디에스(SDS)를 상장시켜 이 부회장 보유주식의 유동성을 높인 것이다. ‘승’ 단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의 연결고리를 줄인 것이다. 이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삼성에스디에스를 삼성전자와 합쳐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이에 속한다. ‘전’ 단계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7.6%를 보유해서 생기는 금산분리 훼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결’ 단계는 그룹 전체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라는 두 지주회사 체제로 정리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합병 삼성물산을 재합병하는 방안도 구상할 수 있다. 현재는 ‘승’ 단계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전’과 ‘결’ 단계를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도 어렵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상당부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후속 승계계획 추진이 어려워진다고 보는 이유는?
=지금 삼성에스디에스와 삼성전자를 합병하면 삼성물산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최근 실적둔화를 반영해 저평가되어 있다. 반면 삼성에스디에스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당연히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2%로 삼성물산의 34%보다 훨씬 많다. 외국인이 반대하는 합병은 추진할 수 없다.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주총 표 분석을 해보면 의미는 명확해진다. 삼성물산 합병안의 찬성과 반대 비율은 7대 3이었다. 하지만 엘리엇이 제안한 두번째 의안(현물배당 도입)과 세번째 의안(주총결의로도 배당 허용)은 찬성이 45%, 반대가 55% 정도였다. (두번째와 세번째 의안에선) 엘리엇 편에서 선 표가 15% 정도 많아졌다는 게 중요하다. 합병안 표결엔 주주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고려 이외에 엘리엇으로부터 삼성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 마케팅’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두번째, 세번째 의안은 주주의 경제적 이익만 고려됐기 때문에, 합병안에 반대한 외국인과 소액주주 가운데 상당수가 찬성했다. 삼성이 삼성물산 합병에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성공했지만, 삼성전자는 장담하기 어렵다. -엘리엇이 공격하기 이전부터 경제개혁연대 등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삼성이 합병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이 지난해 추진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일이 꼬였다.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됐다면, 삼성물산의 건설 쪽을 떼어 붙여서 건설분야 구조조정을 단행했을 것이다. 이후 나머지 삼성물산의 상사 쪽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다면 불공정성 논란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이번 합병을 주도한 삼성 쪽 핵심인사들과 깊숙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아는데, 느낀 점은?
=과거 삼성이 ‘빠른 추격자’였던 시절의 성공요인으로 총수의 리더십, 미래전략실의 기획력, 각사 전문경영인의 전문성 등 이른바 ‘황금의 3각 축’이 꼽힌다. 하지만 ‘시장 선도자’가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미래전략실은 법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회와의 합법적인 소통이 어렵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이번 합병 건에서도 시장의 문제 제기자와 직접 대화를 못했다. 삼성과 대화를 원하는 홍콩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현대차의 한전부지 고가입찰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 현대차에는 개별회사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했는데, 삼성에는 그룹 차원의 개선을 요구한다.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법적 실체가 없고,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미래전략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사태 관련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은?
=초반에 자사주 매각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결국은 미래전략실 가신그룹의 강경론이 사태를 주도했다. 이 부회장이 총수로서 카리스마를 갖추려면 이건희 회장 때처럼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부친의 가신들과 공존해야 한다. 그런데 20년 앞을 내다보는 이 부회장과, 5년 뒤에 물러나는 가신들의 시각이 같을 수 없다. 엘리엇 사태가 발생한 뒤 미래전략실에 주총을 취소한 뒤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합병비율로 합병을 재추진하는 방안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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