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을 겪고 있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환전소에서 외국 관광객들이 환전을 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세계 경제는 10년도 안 돼서 세번째 디플레이션 파도와 맞닥뜨리고 있다.”
투자 운용사 피델리티 월드와이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도미니크 로시는 2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세계 경제가 최근 신흥국발 디플레이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첫번째 디플레이션 파도는 미국 주택시장 거품에서 시작된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였으며, 두번째 디플레이션 파도는 유로존(유로를 쓰는 유럽 19개국) 국가의 재정위기가 일어났던 2011~2012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세번째 디플레이션 파도는 신흥시장 위기에서 비롯된다며, 양상은 이전 신흥시장 위기와 비슷하다고 짚었다. 그는 모든 신흥시장 위기는 외환시장에서 시작해 원자재와 부채, 자산 그리고 마지막에는 실물경제로 번지는 특징이 있고, 이번에도 다르지는 않다고 했다.
로시는 이번 신흥국발 위기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다른 점은 신흥시장의 세계 총생산(GDP)과의 관련성이라고 했다. 97년보다 관련성이 커졌기 때문에 가격뿐 아니라 생산 면에서도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흥시장 위기가 아직 미국에서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시아의 물품 생산 감소는 거의 눈앞에 와 있다고 했다.
로시는 3차 디플레이션 파도에 따른 영향은 이미 무역에서 드러났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절하 경쟁이 각국의 수입량만 줄이고 수출량은 늘리지 못해, 전체적으로 세계 무역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난달 31일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를 예로 들었다.
로시는 결론적으로 3차 디플레이션 파도 탓에 세계 총생산은 잠재 생산력 아래 수준에서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의 잠재 생산력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고, 총생산 전망도 곧 조정될 것이라고 했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각국의 통화 가치 절하 경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적 정책으로 인한 강달러 현상도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대답은 “정책 결정자들이 일을 똑바로 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혁신(기업)에 투자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