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사장, 공정위 국감서 발언
“내부 문제라 곤란” 직접 언급 피해
장비 구입처 바꾸려다 눈밖에 난듯
삼성물산 합병 반대 보고서 낸 뒤
“압력이라 할 수 있는 일 있었다” 시인
“내부 문제라 곤란” 직접 언급 피해
장비 구입처 바꾸려다 눈밖에 난듯
삼성물산 합병 반대 보고서 낸 뒤
“압력이라 할 수 있는 일 있었다” 시인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일가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에 반대하다가 ‘괘씸죄’에 걸려 사퇴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총수 일가가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사익을 얻는 것은 재벌의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7일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사장에게 “계열사인 한화에스앤씨(S&C)와의 거래를 다른 기업으로 이전하는 문제로 한화와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며 “한화에서 보복 차원에서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려는 게 맞느냐”고 질문했다. 주 사장은 “(거래 이전 문제를) 추진하는 것은 맞다. (해임 같은) 내부 문제의 공개는 곤란하다”며 사실상 부인하지 않았다.
주 사장은 전산장비 구입처를 한화에스앤씨에서 아이비엠(IBM)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한화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통합 업체인 한화에스앤씨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 삼형제가 100% 지분을 지닌 회사로, 다른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 한화에스앤씨의 지난해 국내 매출액 4091억원에서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액은 2139억원으로 52.3%에 이른다. 전산장비를 생산하지 않는 한화에스앤씨를 통해 한화증권이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사실상 중간수수료(통행세)만 떼어주는 행위다. 전문 전산장비 업체인 아이비엠과 직거래를 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김 의원은 공정위에 “한화의 일감 몰아주기를 즉각 조사하라”고 요청했다.
주 사장이 7월 삼성물산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방이 치열할 때 리포트를 통해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며 삼성물산 주식 매도 의견을 낸 것도 경질 사유로 꼽힌다. 김승연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과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주 사장은 “보고서가 나간 뒤 압력을 받았느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 “압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삼성 쪽이 한화증권에서 자금을 빼갔느냐는 질문에는 “말하기가 좀 그렇다”고만 답했다.
한화는 7월부터 주 사장에게 경질 의사를 통보했으나, 주 사장은 내년 3월 정기주총 때 물러나겠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사장은 이날 국감에서 2013년 영입 당시에 3년 임기를 보장받았다고 말했으며, 원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주 사장 같은 등기이사의 교체는 주총에서만 할 수 있다. 결국 한화는 9월21일 이사회와 이후 임시주총 개최를 통해 그룹에서 지명하는 인사를 신임 등기이사와 공동대표로 선임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주 사장은 “사실상 사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사장은 취임 뒤 구조조정, 임금체계 개편, 매수 일변도의 투자의견 보고서 개선 등을 단행했다. 한화증권은 2011~2013년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으나, 주 사장 취임 뒤인 2014년에는 1246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화는 보유하던 한화에스앤씨의 주식을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2005년 헐값으로 넘겨 손실을 자초한 혐의로 주주대표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한화에스앤씨는 재벌이 불법승계를 위해 동원하는 수법이 모두 나타난 사례인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는 주 사장을 경질하려는 것은 한화의 잘못된 지배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화는 이에 대해 “한화에스앤씨와의 거래 문제로 주 사장 경질을 시도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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