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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용역’

등록 2015-10-04 20:26수정 2015-10-05 10:28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세계 고급 정보 종합시스템 구축
중소기업 등에 유료화 판매 명분
“국정원 예산 땄으니 밀어주자”
9억원 들여 그린미디어에 발주
국정원 입사 컨설턴트가 작업 주도
결과물은 공개 영문자료 번역수준
산업통상자원부에 딸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이하 시험원)은 산업제품의 시험·평가와 기술개발 지원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이 기관은 10월 현재 ‘수지차 보전 공공기관’이어서 적자가 날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손실을 메우게 돼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9억원의 예산을 들여 ‘그린미디어’라는 소규모 업체에 용역사업을 발주해 국가정보원과 한국자유총연맹 등과 연계한 첩보활동으로 정보를 모아 배포·판매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겨레>가 용역사업 관련 서버의 데이터 파일과 최종 용역 보고서 등을 입수해 이 ‘이상한 용역사업’을 분석해봤다.

■ 용역 발주도 하기 전에 작업 시작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시험원이 발주한 ‘중소기업 맞춤식 글로벌 기술정보 제공을 위한 종합시스템 구축 용역’ 사업에 ‘그린경제’란 매체를 만들어온 ‘그린미디어’가 낙찰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린미디어 용역팀은 이미 2월부터 시험원의 별관 건물에 사무실을 꾸려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지난해 4월에 인턴으로 선발돼 그곳에서 일했던 최아무개씨는 <한겨레>와 만나 “14명 정도의 직원이 시험원 별관 건물에서 일했고, 인턴들은 ‘짐스 서버’라는 곳에 접속해 외신을 번역해 올리는 작업을 5개월 동안 했다”고 밝혔다.

수행 기간 6개월에 9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이 용역사업의 내용은 “해외시장의 고급 정보를 모은 종합시스템을 구축해 중소기업에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기술원은 2017년까지 수십억원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정보 제공을 ‘유료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린미디어가 시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업무 인솔을 맡은 이는 민간 연구소를 차리고 국정원 입시 컨설팅을 해온 민진규씨다.

■ 예산도, 정보도 국정원에서? 지난 1월 그린미디어가 시험원에 제출한 최종 용역 보고서를 보면 그린미디어는 시험원에 ‘케이(K)룸’이라는 상황실을 설치한 뒤 국정원 해외 네트워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유총연맹 등과 연계해 정보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등과 정보협력을 하겠다는 구상도 들어 있다. 모든 작업은 ‘첩보활동’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국가의 중요 정보들을 시험원으로 모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배포·판매한다는 계획이 어떻게 타당성 있다고 판단돼 사업으로 진행된 것일까? 용역사업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6월까지 시험원을 이끈 남궁민 전 원장은 “처음에는 사업 내용을 듣고 반대하니 담당 본부장이 전직 국정원 고위 관료를 통해 15억원의 예산을 따왔다고 했다”고 말했고 당시 본부장도 “국정원 이야기를 한 게 맞다”고 홍영표·박완주 의원실에 증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획재정부도, 산자부도 시험원의 예산 사용을 승인했다.

■ 누가 무슨 작업을 했나 용역사업을 이끈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은 국정원 입시 강의 등의 업무를 해오며 <국정원 합격 가이드북>, <국가정보학>, <창조경제 한국을 바꾸다> 등의 책을 쓴 인물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그린경제’(현 글로벌이코노믹)에 칼럼을 싣고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용역작업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속이고, 보수 성향 사이트 여러 곳에서 기자로 활동해온 정황도 포착됐다.

인턴이던 최씨는 “주말에는 민 소장의 제자라는 이들이 와서 함께 작업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애초 기자로 선발된 줄 알았기 때문에 업무에 대해 의아해하니, 민 소장이 출근 이틀째 날 ‘우리는 국정원 댓글 부대와는 관계없다’는 말을 갑자기 했다”며 “사무실에서 서로의 이름도 물어서는 안 되고 종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업무 방식이 매우 이상했다”고 밝혔다.

집적된 정보의 수준이 낮아 이 시스템의 목표가 고급 정보 집적이 아니라 정보의 ‘배포’에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린미디어가 기술원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에 드러난 데이터베이스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매년 온라인에 공개하는 전세계 정보 자료인 ‘팩트북’을 번역한 수준의 것이었다. 실제 그린미디어의 용역작업 서버 데이터에선 영문 기사를 구글 번역기로만 돌려 뜻을 알 수 없는 수천개의 한글 문서가 발견됐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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