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변신’으로 내수부진 돌파
에너지회사는 영화로…보일러회사는 에어컨으로…시계회사는 보석으로
“기업의 변신은 무죄!” 전통의 중견 내수기업들이 새로운 업종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안정된 성장을 이어왔지만, 최근의 내수부진과 시장 포화를 겪으면서 업종 파괴와 사업 다각화 등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대성그룹은 13일 뉴질랜드 영화사인 ‘에스커패이드 픽쳐스’가 제작하는 영화 ‘블랙 쉽’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1947년 국내 첫 연탄제조업체인 대성산업공사로 시작한 대성그룹은 대구도시가스와 경북도시가스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에너지전문그룹이다. 지난 2002년 창업투자사인 바이넥스트하이테크를 인수하면서 전혀 새로운 영역인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부터 올초 인기를 끌었던 ‘말아톤’, 800만 관객을 모은 ‘웰컴투동막골’ 등이 모두 대성이 투자한 영화다. 최근에는 미국의 모바일게임 유통업체 ‘젠플레이 게임즈’에 지분 20%를 투자해 게임 산업에까지 발을 걸쳤다. 대성그룹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몸을 따뜻하게”하는 사업을 벌이다가 이제는 “마음을 따뜻하게”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일러 업계에서도 사업다각화가 활발하다. 주택보급율이 100%에 이르면서 신규 물량이 크게 줄어든데다 경기가 침체된 탓에 교체물량도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렵다보니 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심해지고, 매출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43년 동안 보일러 사업에만 집중해온 귀뚜라미보일러는 지난해 센츄리에어콘의 아산공장을 인수해 지난 4월부터 냉방사업에 뛰어들었다.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보일러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위기의식이 퍼져 있었다”며 “고민 끝에 같은 설비업종인 냉방 사업에 진출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보일러와 가스기기를 전문으로 만들어온 린나이코리아도 최근 ‘쎄인웰’이라는 브랜드 아래 붙박이 주방기구부터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반찬냉장고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고, 경동보일러는 홈네트워킹 서비스인 ‘이(e)-가(家)’를 시작했다. 시계업종도 ‘시계’(視界)를 넓히는 중이다. 시계 전문업체인 로만손은 지난 2003년 ‘제이에스티나’라는 보석 브랜드를 내놓았고, 2년여 만에 전체 매출의 15%를 넘어서는 효자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59년 문을 연 시계업체 오리엔트는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어 ‘생명공학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아예 회사이름을 오리엔트바이오로 바꿨다가, 최근에는 시계 제조 사업부를 ‘오리엔트’라는 이름으로 분사시켰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기존 산업이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진화되어 가는 산업구조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이라며 “다만 1990년대 말 무분별하게 정보통신(IT) 등 새 사업에 진출했다가 쓰러진 기업이 많은 만큼, 충분한 경쟁력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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