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부지방의 나가노현은 겨울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나가노현 남부 산간지역에 인구 6633명(지난 5월 현재)의 작은 마을 ‘아치’라는 곳이 있다. 아치마을은 2000년 초반까지는 일본의 여느 작은 지방자치단체들처럼 인구 감소와 급격한 고령화로 존폐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주민 자치력을 키워 마을이 탈바꿈했다. 이 마을 지자체와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시·정·촌(시·군·읍) 합병의 거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을을 지켜냈다. 그간 아치마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던 걸까.
이번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28~29일)의 분과세션 ‘지역공동체와 사회적 경제’에서 발표하는 이케가미 히로미치 일본 자치체문제연구소 이사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아치마을은 주민 주체의 마을을 목표로 두고 주민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직접 결정하는 과정을 자치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며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아치마을 주민들은 평생교육시설인 공민관을 직접 만들고 관리하며 자치력을 키워왔다. 지자체는 협동활동추진과를 두고 주민들의 학습활동을 도왔다. 주민 5명 이상이 모여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면 예산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예컨대 마을 어머니들이 모여 마을 농산물을 이용해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식당을 차린다고 하자. 우선 위원회를 만들어 주민 합의를 이끌어내는 학습회 등을 열고, 뜻이 모아지면 행정기관에 예산 편성을 요청한다. 지자체는 시스템에 따라 절차를 거쳐 예산을 배정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일을 자신들의 과제’로 생각하고 풀어가는 역량을 키우게 된다. 이는 주민자치의 탄탄한 기반이 됐다.
아치마을 지자체의 자립적 정책활동의 배경에는 ‘작지만 빛나는 지자체 포럼’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이 포럼에는 전국지사회, 전국도도부현의회의장회, 전국시장회 등 지방 6개 단체의 전국조직이 함께 참여한다. 정보교류와 정책연구를 목적으로 2003년부터 연 2회 포럼을 열고 있다. 이케가미 이사는 이 포럼이 발족할 때부터 힘을 보탰다. 그는 “포럼에 참가하는 지자체는 자립적인 정책활동으로 다양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역사회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선 지역 특성에 맞춘 산업과 문화를 키우고 유지해야 한다”며 “이런 과제를 이루기 위해 지역에서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활성화해야 하고, 지역과 지자체들의 연대에 의한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회장 김영배 성북구청장)와 함께 여는 이번 분과세션(29일)에서 이케가미 이사는 지역의 사회적 경제와 주민자치의 중요성을 발표한다.
이현숙 한겨레 디지털미디어국 기획위원
hs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