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지방정부들이 발전사들을 매입하고 있다. 민간 전력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으니, 지방정부가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오랜 기간 세계 각 나라의 공공서비스 부문 민영화를 연구해온 국제공공서비스연구소(PSIRU)의 데이비드 홀 연구위원(전 소장·사진)이 한국을 찾았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에너지 공공성과 전환의 대안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그는 ‘유럽의 에너지 민영화 실패와 재공영화’라는 발제를 통해 현재 유럽 여러 나라에서 불고 있는 전력 분야 재공영화 흐름을 소개했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 독일을 시작으로 90년대 영국까지 민영화 바람이 불었고, 98년에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발전·배전·송전 부문별 개별 가격 책정과 도소매 시장 운영 등을 규정한 ‘자유화 지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홀 연구위원은 “5~10년 전부터 재공영화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전력 민영화에 나섰던 독일에서 재공영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고 전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BW)주가 20년 전 프랑스 전력회사(EdF)에 매각했던 지역 발전사(EnBW) 지분 45%를 46억유로(약 6조원)에 되사고, 하노버시가 유럽 7대 메이저 전력업체(E.on)로부터 지역 발전회사(Thuga)를 29억유로에 매입한 게 대표적이다. 또 함부르크시는 주민투표를 통해 에너지 재공유화를 결정했고, 베를린에서는 근소한 차로 재공유화 결정이 부결됐다고 한다. 독일에서 재공영화 흐름이 거센 이유로는 정부가 강력한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독일 이외 나라들에서도 재공영화는 활발하다. 스웨덴과 라트비아에선 의회가 전력회사 민영화를 저지했고, 헝가리와 핀란드는 정부가 송전사와 발전사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라트비아는 아예 법으로 에너지 민영화를 금지했다고 한다.
유럽에서의 재공영화 흐름이 한국 에너지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한전 분할매각을 통한 민영화 시도가 논란 끝에 중단됐고, 이후 정부는 발전시장을 사기업에 개방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발전설비 가운데 에스케이(SK), 포스코, 지에스(GS) 등 대기업 비중은 23% 수준까지 늘었고, 증설이 예정된 것까지 고려하면 비중이 30%에 가까워진다.
홀 연구위원은 “일단 전력이나 수도가 민영화된 나라는 요금이 비싸다. 기업들은 3%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지만, 10~15% 수준의 이익률을 보장받는다. 또 전력 분야가 민영화하면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공공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며 “한국도 지방정부에 전력과 관련한 권한을 넘기고, 지방정부가 운영 주체로 나서는 노력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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