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한 '청년희망펀드'가 개시된 21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영업2부점에서 행원이 펀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5.9.21 (서울=연합뉴스)
삼성 250억 이후 대기업 줄줄이
서열순 갹출 “모양새 안좋아” 뒷말
서열순 갹출 “모양새 안좋아” 뒷말
삼성그룹이 250억원(이건희 회장 200억원, 임원들 50억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한다고 밝힌 뒤 대기업들의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재계 서열순에 따라 준조세 성격의 돈을 동일한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갹출하는 것을 두고 재계에서조차 “모양새가 안좋다”는 뒷말이 나온다.
기부금은 재벌 총수가 70~80%를 부담하고 임원들이 나머지 20~30%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모으는 것이다. 지난 22일 삼성을 시작으로 26일 현대차그룹(정몽구 회장 150억원, 임원들 50억원), 27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임원들이 각각 연봉의 20%와 10%(연간 약 40억원)를, 28일에는 엘지그룹이 100억원(구본무 회장 70억원, 임원들 30억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29일에는 롯데그룹(신동빈 회장 70억원, 임원들 30억원)과 효성그룹(조석래 회장 16억원, 임직원 4억원)이 각각 기부금 내놨다.
청년희망펀드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실업 해소 방안으로 처음 제안했고 닷새 만에 출범해 박 대통령이 1호 기탁자가 된 기부형 펀드다. 케이이비(KEB)하나은행에서 전 직원 가입을 지시해 금융권에서 ‘관치 펀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논란 한달여 만에 재계 전반에 가입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하지만 4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의지가 있는 사업이라) 고민하고 있던 중에 삼성이 기준을 제시하니 그에 맞춰 낸 것이다. (내라고) 어디서 연락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눈치는 봤지만, 지시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더라도 논란은 남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실업의 근본적 해결책인 고용을 책임진 기업이 ‘본업’은 뒤로 한채 정부 주도 기금(펀드)에 목돈을 내놓고 생색내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계 서열에 따라 정해진 기부액은 그 ‘진의’를 의심케 한다. 진정한 기부는 가진 돈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과 처지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기부에 참여하는 행위가 국민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리 없다. 모양새가 안좋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희망펀드의 취지를 살리려면 기탁자가 용도를 지정하거나 기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확인하는 감사위원회에 참여하게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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