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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면세점, 유커와 명품이 낳은 ‘황금알’…그러나 거위는 날아간다

등록 2015-11-01 20:17수정 2015-11-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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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에 시내면세점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 워커힐면세점 등 3곳이 어찌 될지가 뜨거운 관심사다. 이른바 ‘상생’에 수천억원씩 쓰겠다고 하면서까지 기존 특허권자인 롯데와 에스케이, 서울시내 신규 진출을 노리는 신세계와 두산이 너도나도 “면세점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지난 여름, 14년 만에 나온 신규 특허 쟁탈전도 뜨거웠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의 주가마저 큰 폭으로 널뛰기를 했다. 면세점 사업이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기대 실적을 좌우할 만큼 알짜사업이란 얘기다.

이처럼 면세점이 시장 안팎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국내 면세점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에 따로 홍보팀이 생긴 게 2011년 겨울이었다. 이전에는 면세점이 뉴스거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유커’로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이 물밀듯이 몰려와 싹쓸이 쇼핑을 하기 시작하면서 면세점은 일약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재벌 총수들까지 면세점 유치에 너도나도 직접 나서고, 면세점 시장 독과점 논란에 국회의 눈길도 매서워졌다. 지난해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 특허 기간은 10년에서 5년으로 대폭 줄었으며, 자동갱신 대신 경쟁입찰로 바뀌었다. 정부는 특허수수료 인상 등을 포함한 면세점 제도 개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면세점을 둘러싼 지금의 흥분 상태는 지속가능한 것일까? 과연 면세점은 언제까지 황금알을 낳을까?

재벌 총수들 “면세사업 허가 달라”
‘상생’ 꽃단장하고 줄서기, 왜?
명품 사랑 유커 지갑 둘러싼 전쟁

과거 국내 면세점 첫 황금시대도
일 관광객이 명품 사러 몰린 덕
일 거품 붕괴로 몰락…구조조정 한파

유커가 열어젖힌 두번째 황금시대
대기업들, 돈 들여 단체여행객 유치
매력 없는 나라?…쇼핑붐 꺼질 수도

정부 면세 특허 대기업 줄세우기 대신
한국 관광정책 새틀 짜기 나서야

한국 면세시장의 지정학

1962년 김포공항에 우리나라 최초의 면세점이 문을 열었다. 한국관광공사의 전신인 국제관광공사가 운영을 맡았다. 1974년에는 남대문 인근 도쿄호텔 옆에 ‘첫 시내면세점’인 남문면세점이 문을 열었다. 기념품가게 수준의 작은 상점이었다. 지금과 비슷한 모습의 대형 면세점은 1979년에 등장했다. 동화와 롯데가 나란히 시내면세점 특허를 얻었다.

초기 우리 면세점의 주요 고객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외국여행이 자유화되기도 전이니 내국인은 면세점을 아예 이용할 수 없었고,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의 절반가량이 일본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영수 전 롯데면세점 사장의 책 <면세점 이야기>를 보면, 1984년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했다. 이는 이후 우리 면세점의 독특한 성격을 규정하는 사건이었다. 백화점에도 없던 루이뷔통이 면세점을 선택한 것은 일본인 관광객 때문이었다. 곧 거품붕괴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지만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일본인의 명품 사랑은 유난했다. 루이뷔통의 뒤를 이어 1985년 에르메스, 1986년 샤넬이 한국 면세점에 들어왔다.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크게 늘어날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시내면세점을 늘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1986년 한 해에만 신라, 한진을 비롯해 5개 면세점이 문을 열었다.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9년에는 모두 29개의 시내면세점이 영업을 했다.

그러나 첫번째 황금시대는 너무나 짧았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거품이 터졌다. 과잉공급된 면세점들은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한때 29개까지 늘었던 시내면세점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한진과 애경 등 대기업도 별수 없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공항을 뺀 시내면세점은 롯데 5곳, 신라 2곳, 동화, 워커힐, 부산파라다이스(현 신세계면세점) 등 10곳만 살아남았다. 롯데와 신라의 점유율이 자연히 높아졌다.

거품붕괴 이후 줄어든 일본인 관광객의 자리는 내국인 소비자가 메웠다. 1989년 여행 자유화 조처와 함께 원래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던 면세점을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소비자도 일본인 못지않게 수입 명품을 선호했다. <면세점 이야기>를 참고하면, 1989년 한 해 동안 10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외국으로 향했고, 그해 면세점 매출은 전년 대비 67.3%나 늘었다.

2000년대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인들이 2010년부터 외국여행을 떠나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수입 명품 선호에 있어서 한술 더 뜨는 중국인 여행객이 가깝고 명품 매장이 잘 갖춰진 한국 면세점으로 몰려들었다. 오랫동안 한국 방문자 수 1위를 지키던 일본이 2012년 10월 처음으로 중국에 자리를 내줬다. 2014년 한 해에 방한한 중국인은 모두 612만6865명이었고, 일본인은 228만434명에 그쳤다. 롯데면세점 자료를 보면, 2012년 내국인 35%, 일본인 30%, 중국인 25%였던 국적별 매출 비중은 2014년 중국인 70%, 내국인 20%, 일본인 3%로 급속히 재편됐다.

유커는 한국 면세점 봉투를 버리지 않는다?…업계의 경쟁력

최근 중국인이 유독 우리나라 면세점으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노재승 롯데면세점 홍보팀장은 ‘신뢰’를 꼽았다. 노 팀장은 “중국 내에는 ‘짝퉁’이 많다. 백화점에도 짝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믿음이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 면세점에서 산 제품을 선물할 때 롯데면세점 봉투째 주는 게 유행처럼 됐다. 짝퉁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격 면에서도 우리 면세점의 수입 명품 가격이 중국 백화점보다 20~30%가량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물밀듯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돈을 면세점을 운영하는 몇몇 대기업이 쓸어담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면세점이 아니었으면 중국인 관광객이 지금처럼 한국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한다. 모든 관광객이 면세점 쇼핑을 하러 한국을 찾는 건 아니겠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게 면세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4~25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싸이, 엑소(EXO) 등이 출연한 ‘롯데면세점 패밀리콘서트’가 열렸다. 초대된 3만5천여 관객 가운데 1만여명이 외국인이었다. 롯데면세점은 해마다 몇 차례씩 한류스타를 동원해 이런 행사를 연다. 롯데면세점이 2012~2014년에 이렇게 유치한 관광객이 33만여명이다. 상하이와 베이징에 자리한 롯데면세점 중국사무소가 현지 여행사들과 함께 기획한 여행상품으로 유치한 중국인 관광객도 최근 3년간 약 211만명에 이른다. 2014년을 기준으로 전체 방한 외국인 1420만명 가운데 155만명(10.9%)을 롯데면세점이 직접 유치했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좁히면 롯데가 직접 유치한 비중은 22.7%나 된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를 기준으로 우리 면세점들이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여행사들에 지급한 송객수수료가 전체 면세시장 매출의 6% 수준인 5400억여원에 이른다. 거액의 송객수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 면세점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 덕분에 한국여행 상품의 가격이 싸지고, 중국인들이 한국여행을 선택한다는 반박도 있다.

관광지로서 한국의 매력 경쟁력은?

외국인, 특히 중국인이 한국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면세점 쇼핑이라는 말은 곧 면세점 쇼핑 외에 관광지로서 한국이 별 매력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면세점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면세점 업계에선 이런 위기감이 높아져가고 있다. 2007년 이후 우리나라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실적에서 줄곧 일본을 앞섰지만 올해 들어 역전됐다. 일본 관광국 자료를 보면, 올해 9월까지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144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8% 급증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958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다. 일본 방문객 급증은 엔화 약세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쿄 긴자, 오다이바 등에 우리와 같은 시내면세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관세와 소비세를 모두 제해주는 면세점과 달리 일반 매장이지만 외국인에 한해 소비세(8%)를 제하고 물건을 판매하는 ‘택스 프리 숍’도 강화했다. 신세계디에프 정준호 부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면세사업은 이제 시작이다. 본격화하면 어떻게 될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도 자국민이 한국이나 일본에 나가서 쓰는 돈을 국내에서 쓰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8월 하이난섬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내면세점을 열었고, 내국인도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중국인의 지갑을 둘러싼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면세점 업체의 임원은 “면세점이 최근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정부가 면세점 특허정책만 고민할 게 아니라 한국의 관광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으면 한다. 면세점 쇼핑에만 의존한 관광객 유치는 환율과 외교갈등 등의 변수에 너무 취약하다”고 말했다. 면세점 업체마다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갖고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기업들에 면세점 사업 기회를 주는 게 관광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무역학)는 지난 15일 열린 면세점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현행) 허가제도를 아예 없애고 면세품에 대한 관리 역량이나 시설을 갖춘 사업자라면 가리지 말고 면세점 특허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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