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에 대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려 ‘면죄부’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이번 결정은 정부가 한계 부실기업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정부 스스로 부실기업 구조조정 정책에 혼선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달 28일 전원회의를 열어 아시아나항공·금호석유화학 등 금호그룹 8개 계열사가 2009년 13월30일 워크아웃 신청일과 그 다음날(31일)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발행한 기업어음(1336억원어치)을 새로 사주거나 만기 연장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한 것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발표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무혐의 이유에 대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범위 안에서 지원한 것이어서, ‘부당지원행위 심사 지침’의 제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금호 계열사와 채권은행 간 재무구조개선 약정이 2009년 6월에 체결됐고, 만기 연장은 금호그룹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뤄져 실질적 기업구조조정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호의 부당지원은 심사지침에서 규정한 구조조정 관련 예외 인정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심사지침은 예외 인정을 “재벌 계열사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손실 분담을 위해 불가피한 범위 안에서 지원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예외 인정의 구체적인 예시로 ‘지원 객체(금호산업·금호타이어)에 대해 기존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가 지분 비율에 따라 지원 객체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경우’를 제시해, 금호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 매입(만기 연장 포함)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 어음 매입이 워크아웃 정식 승인(2010년 1월6일) 이전에 이뤄져, 예외 인정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원회의는 무혐의 결정의 두번째 이유로 “워크아웃이 금호그룹 계열사들의 이익에 부합해 (어음 매입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기업어음을 안 사줘 부도가 나서) 워크아웃이 안 되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되면 기업어음의 가치가 더 떨어지고, 이후 채무조정과 주식 감자 등으로 손해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업어음을 사준 금호석유화학의 설명과 크게 달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호석유화학은 2014년 9월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제출한 서류에서 “회사 자금 담당자들이 금호산업이 발행한 기업어음을 안 사려 했으나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었다 (중략) 기업어음 매입액 165억원 중 145억원은 주당 5천원에 출자전환됐는데, 이후 주가 하락으로 2011년 5월 주식을 팔았을 때 95억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밝혔다.
공정위 안에서도 무혐의 결정이 공정거래법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공정위 간부는 “전원회의가 법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사건을 조사한 부서에서도 무혐의 결정에 깜짝 놀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사를 맡은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워크아웃 신청 기업의 경우 기업어음 발행 자체가 어려운데 계열사들이 이를 사줬고, 같은 기간 개인 및 비계열사들은 오히려 기업어음을 전액 상환받은 점 등을 감안하면 부당 지원에 해당한다”며 전원회의에 제재 의견을 올렸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당시 보유하던 금호타이어의 기업어음(99억원어치)을 현금으로 상환받아, 다른 계열사들과는 달리 손실을 피했다.
공정위의 무혐의 결정은 금융당국이 부실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에도 배치된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7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한계기업은 신속하게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또 금융위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무혐의 결정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부당 지원에 예외 인정을 한 첫 사례다.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 퇴출을 막더라도 구조조정을 빌미로 내세우면 공정위가 제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주게 됐다”고 우려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공정위의 무리한 무혐의 결정은 재벌 봐주기의 전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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