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획재정부가 지난 4일 세금으로 충당하는 일반재정과 보험료를 걷어 운영하는 사회보험의 206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을 추계해 처음으로 발표했다. 한 해 예산이나,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분석할 수 없었던 인구변화와 장기성장률 추세를 반영해 미래 재정을 예측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번 재정전망은 앞으로 재정과 복지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재정전망대로라면 미래는 잿빛이다. 국민연금은 2060년에 쌓아놓은 돈이 바닥나고, 산재보험(2030년), 사학연금(2042년)도 머잖아 고갈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은 당장 10년 뒤인 2025년부터 걷어들인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게 된다. 물론 보장성(국민 의료비 대비 공공의료 지출 비중)을 53.4%(2013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0%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올린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건강보험은 국민연금처럼 적립하지 않고, 한 해 동안 보험료를 걷어 그해 지출하는 구조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느 정도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보험료 인상에 국민적 반감이 큰 상황에서, 특히 건강보험료는 지금도 부과 방식에 문제가 많아 저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의 건강보험제도는 소득과 자녀가 없는 70대 노부부라도 서민아파트를 한 채 가질 경우 월 10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구조다. 반면 재산과 소득이 있는 ‘부자 노인들’은 자녀·아내 등의 피부양자가 돼 보험료를 아예 내지 않을 수도 있다. 건강보험공단 수장이었던 김종대 전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5억원이 넘는 재산과 소득이 있는 제가 퇴직하면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며 “소득이 없던 ‘송파 세 모녀’에게 월 5만원씩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것과 비교해 매우 불합리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건강보험공단 보험료 민원은 1년에 6000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겠다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9월까지 기획단을 운영해 올 1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 발표를 전제로 기자설명회까지 열었다. 고소득층한테 보험료를 더 걷어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연말정산 파동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발표를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지금까지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금 고갈’ 등 사회보험의 암울한 재정전망은 공적 보험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번 발표가 민간보험의 활성화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낸다. 정부가 공적 보험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건강보험 부과체계 발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세종/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세종/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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