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인재개발원 전영민 인재경영연구소장(오른쪽)과 정세진 책임이 사내용으로 만든 워킹맘 복직 지침서를 들고 있다.
인터뷰 l 워킹맘 복직매뉴얼 출판한 전영민 롯데인재경영연구소장
‘잘나가는 기업엔 여성이 많다’
10년전부터 여성 비율 확대 시작
의무육아휴직 대기업 중 첫 도입
육아서적 20여종 핵심 추리고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감수받아
복귀 앞둔 휴직자들에게 보내
좋은 반응에 단행본으로 출판
‘잘나가는 기업엔 여성이 많다’
10년전부터 여성 비율 확대 시작
의무육아휴직 대기업 중 첫 도입
육아서적 20여종 핵심 추리고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감수받아
복귀 앞둔 휴직자들에게 보내
좋은 반응에 단행본으로 출판
경북 경주 출신, 고려대 졸업, 재벌기업 입사 뒤 내리 21년 동안 인사팀에서만 근무. ‘십중팔구 마초’일 거라는 편견을 가질 만한 ‘스펙’을 두루 갖췄지만,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 전영민 상무는 이런 선입견을 산산히 깨뜨린다. 전 상무는 그룹 인사팀에서 일하던 지난 2012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여성 육아휴직의무제도를 제안해 관철시켰다. 이후 인재경영연구소장으로 발령받은 전 상무는 지난해 육아휴직중인 워킹맘들의 회사 복귀를 돕기 위한 지침서를 사내용으로 제작했고, 최근에는 이 지침서를 단행본으로 출판해 화제다.
지난주 서울 양평동 사무실에서 만난 전 소장은 “나도 골수 마초였다”고 털어놨다. 그가 직장내 양성평등과 모성보호라는 화두를 달고 살게 된 계기는 지난 2004년 막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을 맡은 신동빈 회장과의 첫 회의였다. 일본, 미국, 영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 한국 사정에 밝지 않던 신 회장은 인사팀과의 미팅에서 롯데그룹 임원 중 여성이 몇 명인지 물었다. “한 명도 없다”는 대답에 신 회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신 회장이 “서둘러 여성 임원을 만들자”고 주문하자 이번엔 인사팀 임직원들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임원 승진 대상 간부 중에서도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롯데그룹 인사팀의 최우선 과제는 여성 임직원 늘리기가 됐다. 2005년 5%에 불과했던 여성공채 비율이 10년 만에 약 40%까지 늘었고, 여성 간부사원 비율은 1%에서 11%로 늘었다.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들을 붙잡으려 육아휴직의무제도를 도입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68%에서 83%로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여성의 약 20%가 회사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전 소장은 “우리 어머니 세대는 워킹맘이 아니었다. 복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복직 지침서를 만들기로 한 이유다.
전 소장이 인사팀에 있을 때 제안한 육아휴직의무제도의 첫 수혜자이자 전 소장이 인재경영연구소로 온 뒤 첫 복직자였던 정세진 책임(과장)에게 ‘대업’을 맡겼다. 시중에서 잘나가는 육아서 20여종을 수집해 핵심을 추리고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감수를 받았다. 복지제도에 대한 정부 부처의 장황하고 어려운 설명은 쉬운 말로 풀어쓴 뒤 다시 부처 쪽 감수를 받았다. 할머니에게 육아를 맡길 때 주의사항, 베이비시터와 지혜롭게 대화하는 법, 이유식 배달 서비스 등 워킹맘을 위한 ‘실전 지침’으로 꽉 찬 책이 나왔다. 복직을 석 달 가량 앞둔 육아휴직자들과 그룹 전체 임원들에게 지침서를 보냈다.
지침서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세진 책임은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복직율이 높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다른 기업들에서도 소문을 듣고 우리 지침서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영민 소장은 “출판업계는 타깃 독자가 줄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엄마들을 위한 책은 많아도 복직을 앞둔 워킹맘을 위한 책은 시중에 없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워킹맘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단행본 출판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기다립니다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워킹맘 생활지침서가 서점에 깔리게 된 배경이다.
전 소장은 “인구가 줄어 내수시장이 줄어들면 모두가 죽는다. 여성들이 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 그러려면 ‘수놈’들이 정신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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