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외교통상부는 한-미 사이 ‘3년 비공개’ 약속을 이유로 2006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관련 문서의 국회 제출을 거부했다. 하지만 실제 협정문(위)에는 “협상 문서들은 비밀로 하되 입법부를 포함한 정부 공무원들에게는 제공될 수 있다”고 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013년 12월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서 “협상 관련 문서들은 협정 발효 후 3년간 비공개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며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위는 '미국 쪽이 보내온 합의서', 아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서류'.
미 ‘입법부·행정부엔 제공’ 제안에
김종훈 수석대표 ‘동의’ 답신한 뒤
국회엔 ‘비공개’ 이유로 제출 거부
김종훈 수석대표 ‘동의’ 답신한 뒤
국회엔 ‘비공개’ 이유로 제출 거부
정부가 미국과의 합의를 이유로 2006년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관련 문서들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 미국과 맺은 합의문에는 ‘국회에는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미국과의 이런 합의 내용을 숨긴 채 ‘발효 후 3년간 비공개’만 내세워 협상문서 공개를 요구해온 국회까지 속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보공개 청구 소송 과정에서 최근 남희섭 변리사에게 제공한 ‘3년간 협상문서를 비공개하기로 한 한-미 수석대표 간 합의문’을 보면, 미국 쪽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는 ‘협상문서(negotiating documents)들은 비밀로 하되 입법부(legislative branches)를 포함한 정부 공무원들에게는 제공할 수 있다’는 초안을 보내왔고, 한국 쪽 김종훈(현 새누리당 의원) 수석대표도 6일 뒤 보낸 답신에서 이에 동의했다.
두 나라 정부 사이 1차 협상이 개최되기 직전인 2006년 5월 만들어진 이 합의문을 이유로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오간 문서들을 국회에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이런 기조는 이후로도 이어져 2013년 12월 산업부는 박주선 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과정에서도 양측은 협상 관련 문서를 발효 후 3년간 대외 비공개하기로 합의하였음”이라는 서면답변을 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의 한 비서관은 “당시 열람만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됐던 기억이 난다. 합의문 원문에는 ‘입법부를 포함한 정부 공무원’에게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는 (협상과 관련이 있는) 행정부 공무원에게 제공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국회에도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 간 합의에 따르면) 보안 등을 전제로 국회 등에 공개할 수는 있으나, 이 합의 뿐 아니라 대상 정보의 민감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 쪽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의원은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국회에 제공해야 한다’가 아니라 ‘국회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게 합의서 내용이어서 비공개 방침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노출시켰을 경우 의원들도 강한 처벌을 받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아니냐”고도 덧붙였다.
산업부를 상대로 당시 협상 자료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중인 남희섭 변리사는 “협정 발효 뒤 3년 동안 국회에도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속인 것도 문제지만, 정부 스스로 주장한 비공개 기간인 3년이 지났음에도 협상 과정을 계속 비공개하고 있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이럴 거면 3년 비공개 규정에 왜 합의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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