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초 에스케이(SK)그룹의 정기 임원인사를 앞두고 그룹 내 검찰·법원 출신 고위직 3명의 행로에 관심이 모인다. 이번 인사는 횡령과 배임 혐의로 3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최태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뒤 처음 하는 인사다.
에스케이 인사의 핵으로 떠오른 세 사람은 김준호(58) 에스케이하이닉스 사장, 윤진원(51) 그룹 윤리경영위원회 부사장, 강선희(50)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부사장이다. 김 사장은 2004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에서 에스케이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으로, 판사 출신이자 참여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인 강 부사장은 당시 변호사 신분으로 법무팀 상무로 영입됐다. 윤 부사장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을 맡고 있다가 사표를 내고 에스케이씨앤씨 윤리경영실장으로 합류했다.
애초 최 회장 형제의 횡령 사건이 불거지자 유죄는 불가피하지만 구속까지 될 사안은 아니라는 게 법원·검찰 안팎의 분위기였다. 에스케이 법조 3인방은 최 회장의 구속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수감생활 과정에서 최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간파했던 최측근들이기도 하다. 일반 기업체에 영입된 법조인들이 법무·감사 등 제한적인 분야에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이들은 핵심 계열사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최 회장의 고교(신일고)-대학(고려대) 선배이기도 한 김 사장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과 에스케이텔레콤에서 잇달아 인사·구매·법무·대관 등 스태프 부서를 총괄하는 경영지원 부사장을 역임한 뒤 2012년부터 에스케이하이닉스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윤 부사장도 영입 1년 만에 최 회장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현재는 그룹 윤리경영위원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부사장)이다. 그룹 감사팀 수장이랄 수 있는 자리여서 계열사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강 부사장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에서 법무·대관·홍보 등을 관할하는 지속경영본부장(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일한 직원들 사이에서는 ‘법조인 출신답게 합리적이고 시원시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최 회장과 최재원 전 그룹 수석부회장 형제의 횡령·배임 혐의 수사·재판과 관련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수사와 재판에 잘못 대응함으로써 최 회장이 법정구속되고 2년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최종 결정은 최 회장의 몫이지만 이들 ‘법조 라인’에서 ‘실형 가능성 없다’는 등의 잘못된 보고를 올린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과거 총수가 수사 대상에 오른 현대차, 한화, 씨제이(CJ) 등에서는 수사 과정 또는 1심 판결 뒤 법무 라인이 대거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3년 1월 최 회장이 구속된 뒤에도 법조 3인방은 건재했다. 모두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해 접견 형식을 빌려 최 회장을 자주 만나고 업무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그룹 주변에서는 ‘구속될 사안이 아닌데 주인은 감옥에 보내고 마름들은 잘 살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그룹 안팎에선 ‘법조 3인방’이 현재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최 회장 구속과 관련해) 법무 라인의 잘못이 크지만 최 회장 스스로 ‘결국은 내가 결정한 것인데 누구 책임을 묻겠느냐’는 태도다. 이런 상황인데 누가 그들에게 뭐라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이들이 다시 중용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배경에는 최 회장이 마음의 빚이 있는 동생 최 전 수석부회장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설 가석방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내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3인방 가운데 강 부사장은 유일하게 법원 출신이지만, 남편(김진모 인천지검장)은 검찰 고위직 인사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14~15일께 인사가 있을 예정인데,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자신이 없을 때 그룹을 이끌어온 기존 경영진에 대한 최 회장의 신뢰가 깊어 인사 규모는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전했다.
재판 대응 어떻게 했나 잇단 진술 번복에 괘씸죄…상황 악화 자초
“최태원 회장 스스로 제 눈을 찔렀다.” (검찰 고위 관계자)
에스케이(SK)글로벌 분식회계 혐의로 2003년 2월 구속됐던 최 회장은 10년 만인 2013년 1월31일 다시 구속된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을 무속인 출신 김원홍씨에게 맡겨 선물투자를 하도록 했다가 자금이 모자라자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에서 돈을 임시로 빼 쓰도록 한 혐의(횡령·배임)였다.
애초 사건이 불거지자 유죄는 불가피하지만 구속까지 될 사안은 아니라는 게 법원·검찰 안팎의 분위기였다. 펀드에서 빼 쓴 돈을 수사 착수 한참 전에 최 회장이 본인 주식매각 대금으로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공금을 빼 쓰는 순간 횡령죄는 성립하지만, 바로 메워 넣었다면 양형에는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1심에서 최 회장은 펀드에서 돈을 빼도록 지시하지도 않았고, 김원홍씨에게 송금된 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증거인멸 등 괘씸죄까지 더해 검찰 구형대로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최 회장은 항소심에서 펀드 조성에 관여했으나 김씨의 말 때문이었다고 1심 때 주장을 스스로 뒤집었으나 형량은 그대로였다. 1심 때 무죄를 주장하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 진술을 뒤바꾸고 무죄를 선고받았던 최재원 전 수석부회장 역시 2심에서 ‘형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가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당시 에스케이 쪽의 수사·재판 대응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최 회장은 구속 직전에 “1심 재판 대응에 대한 논공행상 차원에서”(에스케이 고위 관계자) 강선희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상황을 낙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부사장이 1심 재판장과 대학·사법연수원 동기(서울대 법대 84학번·20기)라는 점에 기대를 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항소심에서도 에스케이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는 이어졌다. 재판장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것으로 알려진 ‘전관’ 출신 변호사를 거액을 주고 선임한 것이다. 그 탓인지 실제 이 변호사는 법정에서 재판장과 눈길도 마주치지 못한 채 변론을 해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