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회장 아들 소유업체 ASPN
자회사 분류 안돼 중기 자격 인정
‘입찰용 중기확인서’도 부정발급
철도공사 차세대 ERP사업 따내
“‘중기 범위’ 허술한 관련법 개정해야”
자회사 분류 안돼 중기 자격 인정
‘입찰용 중기확인서’도 부정발급
철도공사 차세대 ERP사업 따내
“‘중기 범위’ 허술한 관련법 개정해야”
파리바게뜨 빵집으로 유명한 에스피씨(SPC)그룹의 오너 일가가 대주주인 정보기술(IT) 업체가 중소기업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아 한국철도공사 등 여러 공공기관 발주 사업을 따낸 사실이 드러나자(<한겨레> 12월23일치 18면) 중소기업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중소기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혜택이 엉뚱하게 대기업 관계사에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기본법과 시행령은 자산 5000억원 미만, 업종에 따라 연간 평균 매출액이 400억~1500억원 이하면 중소기업으로 정의한다. 에스피씨그룹 허영인 회장의 두 아들이 지분 52%를 보유한 에이에스피엔(ASPN)은 연간 매출액 330억원, 자산 총액 74억원으로 규모로 보면 중소기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규모가 중소기업 범위에 들어간다 해도 대기업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 중소기업에서 제외될 수 있다. 해당 회사와 대기업의 매출액을 합산해 중소기업 규모 기준을 넘어가면 걸러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기업이 아닌 대기업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이런 거름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의 허점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에이에스피엔은 연간 매출 3조원이 넘는 에스피씨그룹 오너 일가의 회사로 그룹 내 전산 일감을 사실상 싹쓸이 수주하는 등 대기업 관계사의 이점을 누리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의 지위까지 얻고 있다. 중소기업에 돌아가야 할 혜택을 대기업 관계사들이 누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에이에스피엔은 사업 수주 과정에서 ‘공공기관 입찰용 중소기업 확인서’를 부정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확인서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20억원 미만 사업에 입찰할 수 있는 중소기업 자격을 부여하는 서류로, 서류 발급 과정에서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 지원에 관한 법률’(판로지원법)에 해당하는 기업인지를 답해야 한다. 판로지원법은 좀더 엄격해서 대기업 오너의 회사를 대상에서 배제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에이에스피엔은 서류 발급 대상이 아닌데 이를 받아갔다”고 말했다. 앞서 에이에스피엔은 이 서류를 활용해 한국공항공사가 발주한 12억원짜리 사업 등을 따냈고, 철도공사의 180억원짜리 차세대 전사적자원관리(ERP) 구축사업 입찰 때도 같은 서류를 제출했다.
특히 철도공사의 입찰 제안 요청서에는 “(제안서의) 내용이 허위로 확인될 경우 (중략)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돼 있어, 에이에스피엔의 수주를 놓고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에이에스피엔이 철도공사 입찰에서 중소기업 자격으로 ‘상생 항목 가산점’을 받은 것도 관련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 계약처 김홍식 부장은 “부정 발급 문제는 판로지원법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이번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며 최종 계약을 진행할 뜻을 내비쳤다. 또 에이에스피엔 관계자는 “중기 확인서에 판로법 관련 내용이 누락된 것은 실무자가 관련 사항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와 관련해 중기청에서 소명을 요구하면 적극 응하겠다. 그러나 철도공사 입찰의 경우 판로법과 무관하게 중기청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지위를 확인받은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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