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유 값이 12년 만에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졌다. 건설·조선·플랜트 등 산업계의 불황 우려가 커지고, 산유국들의 재정 악화에 따른 국제정세 불안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7일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3.5달러가량 떨어진 배럴당 27.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원유 중심 선물거래소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도 두바이유(3월 인도분)는 전날보다 1.6달러 떨어진 배럴당 29.4달러에 거래됐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북해산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도 선물 시장에서 6일 2달러 안팎씩 떨어진 데 이어 7일에도 1달러 이상 하락하면서, 배럴당 32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2014년 중반까지만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던 원유값은 그해 연말 60달러 수준으로 하락했고, 지난해 11월 중순 30달러대로 떨어졌다. 40달러 선이 무너진 지 한달여 만에 30달러 선까지 무너진 셈이다. 두바이유 값이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지기는 2004년 4월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원유값 하락세는 공급 과잉이 주된 원인이다. 기술개발로 미국 등에서 셰일가스 생산이 활발해지고 산유국들이 시장점유율 경쟁에 나서면서 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핵사찰을 받고 경제제재가 해제될 예정인 이란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공급 과잉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유가 하락은 원가 하락과 가계의 구매력 증대로 이어져 일반 기업들과 소비자들에게 유리하다. 물가 안정과 경상수지 흑자 확대, 경제성장률 제고 등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0% 하락하면 소비는 0.68%포인트, 투자 0.02%포인트, 수출 1.19%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상승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한 물가 하락은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돼 국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기름값은 호황 때 높고, 불황 때 낮은 경향을 보인다. 지난해 유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성장은 정체되고 불황이 심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조선·플랜트·석유화학 업계 등은 해외에서의 발주 취소와 제품가격 하락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유가 하락세가 얼마나 갈지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연구본부장은 “공급 과잉의 핵심 요인이 셰일가스인데, 저유가에 따라 채산성이 떨어져 셰일가스 공급이 줄고 있다. 올해 하반기쯤에는 공급 과잉이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하반기 유가 하락을 예고했던 에스케이(SK)증권 손지우 애널리스트는 “배럴당 30달러 안팎 수준으로 10년은 갈 것 같다”며 “조선·철강·기계 등 수출 위주 굴뚝산업들이 흔들리면서 구조조정과 소비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저유가는 혜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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