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피터 비숍 런던대 교수가 지역 주민과 소통에 기반한 도시 재생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도시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다. 도시는 인구나 산업 구조, 교통·주거 환경 등의 변화에 따라 쇠락과 번성의 엇갈림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도시의 침체는 삶의 황폐화다. 침체에 빠진 도시를 다시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이에 대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국내에선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거나 행정력에 의존하는 도시개발을 주로 꾀했다. 그러나 이런 관 주도의 개발경제 방식으로는 복잡다단한 도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제는 널리 퍼져 있다. 용산참사와 같은 뼈저린 경험에서 얻은 공감대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경제를 통한 도시재생 논의가 요즘 활발하다. ‘자본과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는 ‘도시의 삶’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관 주도·민간투자 의존에서 벗어나
이익 아닌 주민삶 개선에 초점 맞춰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연계성 고려 역효과 최소화 위한 사전협의 있어야
사업주체로 사회적 금융 참여 필요 안산시(시장 제종길)가 경기테크노파크(원장 윤성균)와 공동으로 지난 12~13일 이틀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와 안산 인터불고호텔에서 ‘사회적 경제를 통한 도시재생’을 주제로 외국 전문가 초청 강연 및 포럼을 열었다.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서로 연대하고, 친환경적이며, 시민이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소통이 관건 도시재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피터 비숍 영국 런던대 교수(도시계획학)는 무엇보다 도시재생의 가장 중요한 디딤돌로 ‘참여와 소통’을 꼽았다. 그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주변이 재생사업에 성공해 관광명소가 된 사례를 소개하며, “도시재생은 그 주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연계성을 갖는지를 함께 고려해 마스터플랜을 짜고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간 소통과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킹스크로스역 재생 프로젝트의 주역이기도 한 비숍 교수는 “실행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자들 간 기본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후에도 마스터플랜을 확정하기까지 소통과 합의에 공을 들인 기간이 6년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안산시 도시재생 방향과 관련해, 비숍 교수는 “대규모 공업단지를 안고 있는 안산시가 환경친화적이고 사람 중심의 도시로 변모하겠다는 의제를 마련한 것은 적절하다. 앞으로 자치단체장의 리더십과 의지, 이에 동의하는 커뮤니티의 활발한 움직임과 소통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영국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안용한 한양대 교수(건축학)가 “빠른 산업발전에 따른 단기 성과주의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실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숍 교수는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은 20년, 30년 뒤의 전망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 실행 이후 역효과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려야 한다”고 답했다. ■ 도시 재생의 성과는 전체 지역 주민에게 영국에서는 실행 단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주민참여 사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런던 동부 달스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 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s)이 이번 포럼에서 소개됐다. 1982년 주택조합 형태로 설립된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독특한 방식의 부동산임대·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도미닉 엘리슨 조합 대표는 “도시 내 방치되고 있는 공공소유의 땅이나 건물을 무상으로 장기임대해 신축 또는 개보수를 거쳐 지역 내 상인이나 기업들에 다시 싼 임대료를 적용해 상점이나 사무공간으로 제공한다. 또한 입점 상인과 기업들을 위한 다양한 경영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땅이나 건물 매입, 신축 및 개보수 비용은 사회적 금융으로 조달한다. 영국에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보고 투자를 하거나 대출해주는 사회적 금융이 활발하다. 엘리슨 대표는 조합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조합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스스로 지역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현재 300여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판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의 출현 가능성은 없을까? 제도적 지원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정부는 2015년 기준으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을 선정했으며, 서울시도 뉴타운 개발의 대안사업으로 주민참여형 주거환경관리사업 43곳을 지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행정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은 단기에 자금이 대거 해당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지역 임대료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사단법인 사회주택협회의 전은호 사무국장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부터 지역 주민의 삶을 지켜내려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다양한 지역공동체, 그리고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 금융자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업 주체가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도 “중앙정부나 지자체 단위에서 일방적 개발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개선하면서 지역의 자산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종길 안산시장은 초청강연과 포럼 참가자들의 토론이 마무리된 뒤 “행정 주도의 도시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주민들과의 협치를 통해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재생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배우고 영감을 얻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과 더불어 상상 그 이상의 도시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의지를 갖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이익 아닌 주민삶 개선에 초점 맞춰
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연계성 고려 역효과 최소화 위한 사전협의 있어야
사업주체로 사회적 금융 참여 필요 안산시(시장 제종길)가 경기테크노파크(원장 윤성균)와 공동으로 지난 12~13일 이틀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와 안산 인터불고호텔에서 ‘사회적 경제를 통한 도시재생’을 주제로 외국 전문가 초청 강연 및 포럼을 열었다.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서로 연대하고, 친환경적이며, 시민이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소통이 관건 도시재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피터 비숍 영국 런던대 교수(도시계획학)는 무엇보다 도시재생의 가장 중요한 디딤돌로 ‘참여와 소통’을 꼽았다. 그는 런던 킹스크로스역 주변이 재생사업에 성공해 관광명소가 된 사례를 소개하며, “도시재생은 그 주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연계성을 갖는지를 함께 고려해 마스터플랜을 짜고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간 소통과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킹스크로스역 재생 프로젝트의 주역이기도 한 비숍 교수는 “실행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자들 간 기본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이후에도 마스터플랜을 확정하기까지 소통과 합의에 공을 들인 기간이 6년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안산시 도시재생 방향과 관련해, 비숍 교수는 “대규모 공업단지를 안고 있는 안산시가 환경친화적이고 사람 중심의 도시로 변모하겠다는 의제를 마련한 것은 적절하다. 앞으로 자치단체장의 리더십과 의지, 이에 동의하는 커뮤니티의 활발한 움직임과 소통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영국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안용한 한양대 교수(건축학)가 “빠른 산업발전에 따른 단기 성과주의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실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숍 교수는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은 20년, 30년 뒤의 전망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 실행 이후 역효과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려야 한다”고 답했다. ■ 도시 재생의 성과는 전체 지역 주민에게 영국에서는 실행 단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주민참여 사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런던 동부 달스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 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s)이 이번 포럼에서 소개됐다. 1982년 주택조합 형태로 설립된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독특한 방식의 부동산임대·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도미닉 엘리슨 조합 대표는 “도시 내 방치되고 있는 공공소유의 땅이나 건물을 무상으로 장기임대해 신축 또는 개보수를 거쳐 지역 내 상인이나 기업들에 다시 싼 임대료를 적용해 상점이나 사무공간으로 제공한다. 또한 입점 상인과 기업들을 위한 다양한 경영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땅이나 건물 매입, 신축 및 개보수 비용은 사회적 금융으로 조달한다. 영국에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보고 투자를 하거나 대출해주는 사회적 금융이 활발하다. 엘리슨 대표는 조합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조합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스스로 지역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현재 300여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판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의 출현 가능성은 없을까? 제도적 지원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정부는 2015년 기준으로 도시재생 선도지역 13곳을 선정했으며, 서울시도 뉴타운 개발의 대안사업으로 주민참여형 주거환경관리사업 43곳을 지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행정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은 단기에 자금이 대거 해당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지역 임대료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사단법인 사회주택협회의 전은호 사무국장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부터 지역 주민의 삶을 지켜내려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다양한 지역공동체, 그리고 지역에 기반한 사회적 금융자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업 주체가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도 “중앙정부나 지자체 단위에서 일방적 개발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개선하면서 지역의 자산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종길 안산시장은 초청강연과 포럼 참가자들의 토론이 마무리된 뒤 “행정 주도의 도시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주민들과의 협치를 통해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재생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배우고 영감을 얻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과 더불어 상상 그 이상의 도시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의지를 갖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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