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NH카드 고객 5000여명 손배소
“관리·감독 소홀, 정신적 피해” 판결
변호인 “10만원 한정은 아쉬워”
진행 소송 22만명 90여건 관심
“관리·감독 소홀, 정신적 피해” 판결
변호인 “10만원 한정은 아쉬워”
진행 소송 22만명 90여건 관심
지난 2014년 발생한 카드사들의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당시 무려 1억여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데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만 96여건의 관련 소송(원고 수 22만2561명)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카드사들의 총 배상액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박형준)는 22일 정보유출로 피해를 본 케이비(KB)국민카드와 엔에이치(NH)농협카드 고객 5000여명이 카드사와 신용정보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KCB)를 상대로 낸 4건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카드사들은 케이시비와 연대해 피해자들에게 1인당 각 1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카드사들의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카드사들은 케이시비 직원의 계획적인 범행으로 정보유출이 일어난 만큼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관리·감독할 의무 등을 다하지 않은 책임이 인정된다”며 “유출된 정보는 제3자에 의해 열람됐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큰 만큼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과 사건 이후 카드사가 고객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 점을 고려해 배상액을 10만원으로 한정했다.
2014년 1월 케이비국민카드·엔에이치 농협카드·롯데카드에서 1억 건이 넘는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당시 카드사에 파견돼 있던 코리아크레딧뷰로 직원 박아무개씨가 카드사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컴퓨터로 개인정보를 빼간 것이다. 박씨는 엔에이치농협카드에서 약 2259만명, 케이비국민카드에서 5378만명, 롯데카드에서 2689만명의 정보를 자신의 이동식저장장치(USB)로 옮겨 유출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 일부는 대출업자에게 넘어가는 등 ‘2차 피해’도 발생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피해자 쪽을 대리한 이흥엽 변호사는 “지난 2008년 하나로텔레콤(현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이 이름·생년월일·주민번호 등을 유출시킨 사건도 배상액이 1인당 2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카드번호·재산명세·카드 유효기간 등 중요 신용정보가 대량 유출된 이번 사건의 배상액이 10만원으로 한정된 것은 아쉽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엔 사과를 하던 카드사들이 집단분쟁조정도 거부하고, 소송을 2년 가까이 지연시킨 것은 사건이 잊히기를 기다리겠다는 심산”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카드사들은 이번 소송에서 ‘피해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며 수천 명에 이르는 원고(피해자)들의 정보유출을 확인하는 컴퓨터 화면을 캡처해 제출하도록 해서 소송을 지연시켰다. 이 때문에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3년에 불과해 재판이 지연될수록 추가 소송 제기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유선희 서영지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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