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프라스틱 백남일 사장이 자사 버클이 달린 베낭을 메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복제 손떼지” 박람회 쏘다니다 조인트벤처 세워 급성장
현지인력 활용 마케팅 주효…220국에 올 300억수출 기염
현지인력 활용 마케팅 주효…220국에 올 300억수출 기염
강소기업이 뛴다-① 우진프라스틱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체 수의 99%, 종업원 수의 9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산업의 ‘천하지대본’이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양극화 현상의 심화 탓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혁신을 하지 않으면 고사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중소기업 가운데 내수기업→글로벌기업, 노동집약산업→지식집약산업, 개별기업→네트워크기업, 노사분리기업→노사일체기업, 불투명기업→투명기업, 수급기업→독립기업 등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거듭난 이웃들을 소개한다. “등산 바지나 배낭에 달린 버클을 뒤집어보세요. ‘우진 듀라플렉스’(WOOJIN DURAFLEX)라는 이름이 있으면 그건 명품입니다.” 1200여개에 이르는 버클 하나하나의 이름과 용도 등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버클 할아버지’ 백남일(71) 우진프라스틱 사장의 눈은 자부심으로 빛난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우진프라스틱은 스포츠 용품이나 배낭, 등산장비 등 ‘아웃도어’ 용품에 쓰이는 플라스틱 버클을 만드는 곳이다. 작은 부품이지만, 버클은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등산 로프에 달린 버클이 영하 30도에서 터져버리거나 높은 온도를 버텨내지 못하면 바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패션이 주도하는 스포츠용품 업계에서는 버클의 디자인도 품질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진프라스틱은 플라스틱 버클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다. 생산하는 버클의 종류는 1230여개, 거래처는 전세계 220여곳이다. 일본의 YKK, 미국의 ITW 등 쟁쟁한 경쟁업체들이 있지만, 나이키와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등 세계 유명 스포츠업체는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버클의 70% 이상을 우진에서 사간다. 버클 하나의 값은 50~300원이다. 우진의 수출액이 이미 2000년에 1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3000만달러(300억원)를 바라본다니,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를 셈해보기도 어렵다. 지금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버클 명가’로 자리잡았지만, 1992년의 우진프라스틱은 해외 유명제품의 복제품을 만들던 영세한 회사였다. 젊은 시절 비료회사를 뛰쳐나와 자동차부품, 건축업 등에 손을 댔지만 모두 망했다. 그런 백 사장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플라스틱 버클 제조업이다. 1979년 서울 변두리에 기계 2대를 갖다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13년 동안 카피(복제품)만 만들었어요. 미국이나 일본에서 괜찮은 버클이 나오면 비슷하게 배껴서 찍어내는거죠. 하지만 별 기술없이 복제해서 납품만 하다보니까 돈도 안되고 미래도 없어보이고… 계속 적자만 나니까, 더 망하기 전에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백 사장에게는 꿈이 있었다. 기술도 없고 판로도 없었지만, 기회만 닿는다면 좋은 버클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고 싶었다. 그 전에 7년 동안 해외에서 열리는 유명 ‘아웃도어 스포츠’ 박람회를 찾아다니곤 했다. “초청해준 사람도 없고 반가워하는 사람도 없었죠. 그냥 무작정 빙빙 돌아다니다가 들어오는 겁니다. 사업을 접어야겠다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미국 박람회를 갔는데, 거기서 눈에 확 띄는 버클을 발견했어요.” 그 제품을 만든 곳은 미국의 ‘내셔널 몰딩’이었다. 면담신청도 하지않고 무작정 그 회사의 조셉 엔셔 사장을 찾아간 그는 “당신 회사 제품, 너무 좋다. 최고다. 같이 일하자”고 매달렸다. 당시 주문은 밀려들지만 일손이 없어 고민하던 엔셔 사장에게도 우진의 제안은 반가웠다. 이듬해 내셔널몰딩과 조인트벤처를 세우고, 우진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5년 100만달러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97년에는 500만달러, 2000년에는 1000만달러로 급성장을 이어갔다. 백 사장은 해외 진출을 꿈꾸는 기업에게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물건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마케팅을 제대로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며 “중소기업은 해외 전시회를 적극 활용하고, 특히 현지 마케팅 인력을 적극 고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전시회에서 한국 직원을 우두커니 세워놓거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때, 우진은 현지에 정통한 판매 브로커 등을 적극 고용했다. 제품을 현지 언어로 충분히 알리고, 관계를 유지하다보니 거래처를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우진은 얼마전 거래처 대부분에 버클 수납장을 설치해줬다. 스포츠용품 회사들이 시제품을 만들 때 버클을 필요로 하는데, 버클이 워낙 작고 종류가 많아 제대로 찾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백 사장은 “우리 영업사원들은 1년 내내 거래처 다니면서 새 제품 소개하고, 부족한 버클 채워주는게 일”이라며 “고객사도 좋아하고, 우리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매년 두차례씩 해외에서 열리는 대형 박람회에 참가해,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방안을 찾는다. “제품 디자인부터 금형, 완제품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백 사장은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금속부품이 많은 군납시장에 플라스틱 대체품을 납품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백 사장은 “제품을 전문화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구리/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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