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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정치권 개입·비리 끊겠다더니…잡음 여전한 ‘철강왕국’

등록 2016-02-15 20:40수정 2016-02-16 08:50

2015년 12월까지 포스코의 대관 업무를 맡았던 정민우 전 이아르(ER)실 팀장이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포스코를 살려달라’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2015년 12월까지 포스코의 대관 업무를 맡았던 정민우 전 이아르(ER)실 팀장이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포스코를 살려달라’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갈 길 못찾는 포스코
지난해 포스코는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1968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냈다. 이런 실적 악화 배경에는 전세계 철강업의 침체라는 외부 요인뿐만 아니라 정준양 전 회장 재임 시절 국내외에서 이뤄진 무리한 사업 확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권오준 현 회장은 2014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전임 회장 시절의 사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후,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과 비리 척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 작업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전임 경영진 및 정치권과의 거리두기가 과연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달 초 진행된 임원 인사 과정에서는 또다시 ‘정치권 입김설’이 불거졌다. 도대체 포스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렇게 잡음이 끊이지 않는 걸까?

정권 바뀔 때마다 ‘낙하산’ 단골
무리한 확장 끝 지난해 첫 적자
책임 당사자에 변호사비 지원도 

새 경영진도 정치권 입김 논란
포스코 임원 인사발령 다음날
대구로 가 ‘친박’ 실세들 면담
‘화력발전소 건립 논의’ 해명 불구
총선 앞두고 ‘부적절 처신’ 뒷말 

경영진 비판 팀장 ‘음해’ 면직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정치권 개입에 취약한 구조 지난해 11월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을 기소하면서 “이상득 전 의원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정 전 회장은 그 태생적 한계로 정권 실세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권을 챙기려는 정권 실세와 자리를 원하는 내부 경영진 간의 결탁이 포스코의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얘기다. 포스코가 회생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 개입부터 차단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한 임원은 “물품 납품부터 업체 선정까지 개입하려는 정치권 인사들이 너무 많다.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들이 수시로 포스코 계열사나 관계사에 들어온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까닭에 포스코 주요 임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눈이 많다. 이달 초 임원 인사가 있은 다음날인 2일 권오준 회장과 김진일 사장, 신임 사장으로 승진한 황은연 경영인프라본부장은 대구에 내려가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황 사장은 이에 앞서 이날 오후 대구 서구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찾기도 했다.

포스코는 2일 저녁식사 자리에 대해 “지역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 공직자들과 민관 협조 차원에서 만났으며,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문제 등 애로 사항과 현안에 대해 설명했다”며 밝혔다. 김관용 지사 쪽도 “포스코가 추진 중인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애초 서울에서 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최경환 의원의 일정이 맞지 않아 최 의원이 윤두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는 날로 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4·13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재계 6위 기업의 경영진이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과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뒷말이 나온다.

지난해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공장 안에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계획을 밝혔으나, 포항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대기환경보전법상 청정연료 사용 지역인 포항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은 불가능하다”며 반대해왔다. 포스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재계 인사는 “포스코가 아무리 어렵고 경비 절감을 해야 하지만, 지역 주민들을 먼저 설득하는 게 순리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 실세를 만나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을 논의하는 건 너무 옛날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 정준양 전 회장에게 변호사비 지원 포스코는 지난해 뇌물 공여와 배임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정준양 전 회장과 부실기업인 성진지오텍 인수 실무를 맡은 전아무개 전 포스코건설 전무의 변호사 비용을 지원했다. 애초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용을 지급했다가 수사 막바지인 지난해 9월께 내부 지침을 뒤늦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유상부 전 회장에 대해서도 회사가 기소 전까지 변호사비를 지원하는 등 전례가 있었던 것을 문서화한 것일 뿐이다. 개인 범죄가 아닌 회사 업무와 관련해서는 변호사비를 지원했고, 정 전 회장이 기소된 뒤에는 지원을 중단했다. 사후 지원금 회수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확정 판결에 따라 정산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포스코는 정 전 회장 쪽에 지원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대형 로펌 등 두세 곳으로부터 법률 조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회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심리로 진행된 1·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과 관계없이 정 전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문제가 많았다는 내부 지적이 많다. 정 전 회장 시절 포스코에서 일했던 임직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생판 모르는 수십개의 국내외 계열사들이 갑작스럽게 추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요 전망 및 투자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영 판단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다. 현재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포스코 제철소 건립도 정 전 회장 시절 급하게 추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로 드러난 포스코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정 전 회장의 변호사비를 지원한 데 대해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 ‘1인시위’ 나선 전 대관 담당 팀장 경영 실적 악화와 임원 인사 과정에서의 잡음으로 회사가 뒤숭숭한 가운데, 지난해 12월까지 포스코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했던 정민우 전 이아르(ER)실 팀장이 핵심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포스코를 살려달라’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대관 업무 담당자는 보통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기업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일을 한다. 그만큼 회사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이런 업무를 담당했던 간부가 외부에서 회사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앞서 지난 1월말 포스코는 정 전 팀장에 대해 ‘회사 경영층에 대한 음해성 정보를 외부로 전달했다’는 등의 사유로 면직 처분을 내렸고, 정 전 팀장은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다.

정 전 팀장은 “권오준 회장은 전임 회장 시절의 부실 경영과 단절하지 못하고, 황은연 사장은 정치권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사장은 정 전 팀장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지금은 포스코를 떠난 한 직원은 “1인시위에 나선 팀장의 주장에 공감하는 직원도 있고, 징계 문제로 저렇게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회사 문제에 아예 무신경한 직원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회사가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가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내에는 익명게시판이 있으나 실제 익명성이 보장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커지면서 약 10년 전부터 직원들 간 의견 개진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는 15일 정 전 팀장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악의적 소문 유포가 조직적인 회사 흔들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단호한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대구/김일우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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