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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대한항공, 어디까지 추락해봤니?

등록 2016-03-18 19:56수정 2016-03-21 10:15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땅콩회항’ 사건 2차 공판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번 조 회장의 ‘댓글사건’을 두고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선 “땅콩회항 사건이 떠들썩했지만 승무원들을 사내 소모품으로 여기는 기업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땅콩회항’ 사건 2차 공판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번 조 회장의 ‘댓글사건’을 두고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선 “땅콩회항 사건이 떠들썩했지만 승무원들을 사내 소모품으로 여기는 기업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조양호 회장의 ‘댓글사건’
▶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첫승을 거둔 지난 13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부기장 김아무개씨의 페이스북 글에 적은 댓글이 논란이 됐다. 조종사가 하는 업무를 소개한 김씨의 글에 조 회장은 이렇게 적었다. “비행기 조종이 자동차 운전보다 쉬운데 힘들다고? 개가 웃어요.” 조종사에게 ‘버럭’ 한 아버지 이야기는 1년 전 승무원에게 ‘버럭’ 했던 딸을 떠오르게 한다. 2014년 ‘땅콩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여객기 조종사들은 비행 전에 뭘 볼까요?”

김아무개 대한항공 부기장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종사의 비행 전 업무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한달에 10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시선에 대한 나름의 해명 글이었다. 이 글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댓글을 달았다. 조 회장은 “전문용어로 잔뜩 나열했지만 99%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운항관리사가 다 브리핑해주고, 기상 변화는 오퍼레이션센터에서 분석해준다. 조종사는 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자동조종장치)으로 가는데”라고 썼다. 그는 이어 “아주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 마치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횡단한 린드버그 같은 소리를 하네요. 열심히 비행기를 타는 다수 조종사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외국계 등 항공사 이직 조종사 122명

회장님의 댓글에 조종사들은 분노했다. 한 조종사는 “오너가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조종사들에게 칭찬을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비난하고 나선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운항관리사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 조종사는 노조 게시판에 “자동차 운전보다 쉬운 비행기 조종이라니… 난 왜 이 쉬운 걸 못해서 대학 4년, 군 11년, 그리고 민항 10년을 안전비행 하느라 공부하고 연구했을까”라고 적었다.

노조는 “조 회장이 엉터리 지식을 갖고 항공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땅콩회항’ 사건이 있은 지 1년 만에 또 입길에 오르면서 회사 이미지가 더 나빠질까봐 대응을 하기도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 회장은 13일 대한항공 부기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는 취지의 댓글을 직접 달았다. 사진은 조양호 회장이 직접 쓴 페이스북 댓글 갈무리 화면.
조 회장은 13일 대한항공 부기장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는 취지의 댓글을 직접 달았다. 사진은 조양호 회장이 직접 쓴 페이스북 댓글 갈무리 화면.

조 회장이 일개 직원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것은 임금협상 결렬로 11년 만에 파업에 들어간 조종사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조 회장의 급여 인상률이 37%라는 기사를 보고 이에 맞춰 똑같이 임금인상을 해줄 것을 사쪽에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가 참고한 기사는 숫자 오류가 있었다. 실제로 조 회장의 임금은 계열사 전체를 합해 6.2% 인상됐고, 대한항공 급여 인상분만 따지면 1.6% 올랐다. 노조는 이 같은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십수년간의 임금 인상률, 외국 항공사 조종사의 임금 수준 등을 비교하며 37% 인상안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한항공 사쪽은 터무니없는 숫자라고 맞섰다. 협상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노사는 평행선을 달렸다. 노조는 지난 2월부터 쟁의행위에 들어갔다. 가방에 ‘일은 직원 몫, 돈은 회장 몫’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사쪽은 지난달 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달 초에는 ‘24시간 이내 연속 12시간 근무 제한’ 규정을 이유로 비행을 거부한 조종사 박아무개씨를 파면했다. 이어 쟁의 관련 스티커를 가방에 붙인 조종사 20여명에 대한 징계에도 나섰다.

조종사 노조와 사쪽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배경엔 사실 항공사들이 처한 위기가 있다. 외국계와 저비용 항공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한항공은 조종사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대한항공에서 다른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 수는 122명으로 2013년(21명), 2014년(16명)과 견줘 6배 이상 급증했다.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 직후인 지난해부터 기장은 물론 부기장들까지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증가했다. 중국 항공사가 한국인 조종사를 선호하면서 항공사마다 조종사 이탈 현상이 심각해졌다. 대한항공 이직 현황을 보면 국내 저비용 항공사로 옮긴 조종사가 75명으로 가장 많았고, 2~3배의 연봉을 주는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도 46명에 달했다.

조종사 이탈이 늘면서 채용도 매년 증가 추세다. 대한항공은 2013년 161명, 2014년 182명에 이어 지난해 237명의 조종사를 새로 채용했다. 그러나 빠져나간 인력보다 채워지는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지난해 이직자는 전년 대비 662% 증가했지만 신규채용은 30% 증가에 그쳤다. 대한항공은 모자라는 조종사 수를 채우기 위해 외국인 기장 채용도 늘리고 있다. 2013년 44명이던 외국인 조종사 신규채용 인원을 지난해 77명까지 확대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 조종사끼리 팀을 이루는 일도 생겨 기장이 하는 기내 방송을 승무원 사무장이 대신 하는 일도 벌어진다.

근속연수 및 비행시간 등에 따른 기장 승급 기준이 달라 조종사 노조가 반대했던 저비용 항공사 출신의 조종사 채용도 지난해 처음 이뤄졌다. 대형 항공사와 달리 저비용 항공사는 짧은 기간에 기장 승급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노조는 더 오랜 경력을 갖고도 기장이 되지 못한 조종사들과의 형평성 및 안전 등을 이유로 채용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사쪽은 지난해 저비용 항공사 출신 조종사 4명을 채용하는 등 이들을 채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이 처한 인력부족 상황은 비단 조종사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진 승무원들의 처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승무원은 “연차가 100일 넘게 쌓여도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휴가를 쓰기가 어렵다. 땅콩회항 사건이 떠들썩했지만 승무원들을 사내 소모품으로 여기는 기업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댓글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은 한국과 미국에서 조종 교육을 받기도 하는 등 조종에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 댓글을 달게 된 실제 의도는 오토파일럿(자동조종장치) 시스템의 발달과 회사에서의 다양한 지원에 힘입어 조종 근무환경이 과거보다 개선되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적절치 못한 표현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비행기 조종, 자동차 운전보다 쉬워”
직원 페북에 댓글 단 조양호 회장
파업 돌입한 조종사 노조와 갈등
회사, 쟁의행위 직원 징계에 나서
외국·저가 항공사 조종사 이직 붐

신규 채용 적어 인력부족 호소도
‘땅콩회항’ 이후 소통 늘었지만
이미지 회복 더디다는 평가 나와
여객점유율도 매년 떨어져 ‘위기’
또다시 등장한 오너리스크 악재

1위 항공사 자리도 아시아나에 내줘

회사의 변화를 못 느끼겠다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많지만 땅콩회항 사건 이후 변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지난해 시무식 때 사내 소통위원회를 만들어 기업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다만 소통위원회 대신 소극적인 조처로 사내 익명게시판인 ‘소통광장’이 생겼다. 이달로 개설된 지 1년이 된 소통광장은 지난 1월 기준 1천여건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다. 직원 복지, 시설장비 확충, 업무절차 개선 등의 안건이 주를 이룬다. 한 조종사는 “한때 소통광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소통광장에 올라온 안건에 대해 지시도 하고 직접 댓글도 다는 등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땅콩회항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결과, 보수적이었던 조직문화를 깨고 유연하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이미지 회복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14년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을 조사한 결과 1위였던 대한항공은 땅콩회항 사건 여파로 지난해 9위로 추락했다. 브랜드가치 평가회사인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2015년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서도 종합 6위였던 순위는 39위로 추락했고, 항공사 1위 자리도 아시아나항공(종합 18위)에 내줬다.

떨어진 신뢰만큼 회복이 시급한 건 재무구조다. 저비용 항공사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대형 항공사들의 여객 점유율은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 국제선 실적이 4.9% 늘어난 데 비해 국적 저비용 항공사 실적은 37.6% 증가했다. 국제선 분담률도 매년 떨어지는 등 실적 악화로 인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000%를 넘겼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 악화에 따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노사 갈등부터 봉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위기’와 ‘혁신’ 등을 키워드로 제시하며 “변화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개선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특히 중점을 뒀던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부하 직원의 에스엔에스에 ‘비행기 조종이 운전보다 쉽다’는 댓글을 단 조 회장의 행동은 그동안 외쳤던 소통의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일부 조종사들이 과장한 부분이 있더라도 직원들의 힘든 점을 다독이며 다시 이야기해보자 했으면 얼마나 품위있는 대화였겠나. 조 회장의 댓글은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예의와 도리마저 팽개친 것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몸과 욕설로 갑질을 했다면 조 회장은 말과 영혼으로 갑질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벌 기업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가진 오너리스크는 크나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진그룹은 재무구조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해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노사 간의 성실한 대화를 통한 자구노력이 필요한데 땅콩회항 사건과 이번 댓글 논란 등을 보면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잘 되고 있나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지배구조 문제가 결국 표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진그룹은 조현아·조원태·조현민 3남매가 각각 호텔, 대한항공, 진에어 등 그룹 내 관련사업을 나눠 맡고 있어 그동안 승계 구도가 불분명했다. 그러다 지난해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맡은 직무에서 모두 사임하면서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에게 책임과 역할이 쏠리고 있다. 여객·화물영업 및 기획부문을 담당했던 조원태 부사장은 지난 1월 대한항공 전 부문을 관장하는 총괄부사장에 선임됐다. 이어 이달 18일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선임돼 한진그룹 3세 경영 승계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대표이사는 한진해운신항만 이사, 한진칼 대표이사, ㈜한진의 사내이사를 맡는 등 한진그룹의 육해공 부문에 모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인하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교 운영과 관련된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욕설을 내뱉는 등 불미스러운 일로 곤욕을 치른 바 있어 조 대표이사의 승계를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현재까지 뚜렷이 드러난 경영 성과가 없어 우호적인 평가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1년 전 땅콩회항 사건은 오너리스크가 어떻게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지 보여주는 일례였다. 사건 초기 대한항공은 오너 일가가 반성과 사과 대신 변명과 회피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을 반면교사 삼아 위기관리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재벌들이 늘었다. 메르스 국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재벌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사건의 주체인 대한항공의 변화는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안진걸 사무처장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었던 대한항공이 사건 직후 반성하는 모습으로 기업문화를 바꾸겠다고 해 기대를 걸었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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