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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조합원들이 만드는 민주주의 축제…주총과 다른 협동조합 총회

등록 2016-03-20 20:16

협동조합은 출자 액수에 관계없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학습의 장이다. 지난 12일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열린 땡땡책협동조합 총회는 조합원 자녀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의 마당이었다. 땡땡책협동조합 제공
협동조합은 출자 액수에 관계없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조합원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학습의 장이다. 지난 12일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열린 땡땡책협동조합 총회는 조합원 자녀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의 마당이었다. 땡땡책협동조합 제공
“사무국은 조합원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살피고, 관계를 엮어가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무국에서의 제 직함보다 ‘공식환대’라고 불러주세요.” 전유미 땡땡책협동조합 사무국 직원이 환하게 웃었다. 조합원 한 명 한 명과 서로 안부를 나누며 반갑게 ‘환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 역시 한 명의 ‘조합원’이다.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무교동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열린 땡땡책협동조합 총회. 조합원들 간의 독서모임을 활성화하고, 소규모 독립출판사와 독자 사이의 도서 직거래가 이 협동조합의 주요 사업이다.

사무국 직원들이 총회 열기 전에
전국 각지 조합원들 찾아다니며
다뤘으면 하는 안건 미리 들어
수렴된 의견들 총회장에서 소개

“조합원의 필요와 욕구는
누군가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총회와 같은 민주적 행사로
모두가 함께 채워가는 것”

2014년 2월 열린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습.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제공
2014년 2월 열린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습.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제공
접수대 맞은편에는 캐리커처 부스가 차려져 있다. 조합원들의 자녀가 손님이다. 손님들은 저마다 의자에 앉아 자기 얼굴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캐리커처 작가가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고 나서 화폭에 ‘난 요리사가 될 거야’라는 말풍선을 달아주었다.

총회장 들머리에는 출판사 조합원들이 발행한 책들이 전시·판매되고 있었다. 독자 조합원과 출판사 조합원 간의 직거래 장터가 서는, 다소 이색적인 풍경이 조합원 총회장에 벌어지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 총회 참석자 접수대로 가니 총회 자료집과 함께 조합의 1년 활동을 담은 소식지가 가지런하게 수북이 놓여 있다.

직거래 장터로 좀 왁자지껄한 가운데 한시간쯤 흘렀을까. 총회가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조합원끼리 짝을 지어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가 먼저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옆자리에 앉은 낯선 조합원과 5분 동안 갑자기 상호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니라 옆사람을 전체 참석자들에게 소개해야 한다. “이 조합원은 겉으로 보면 얼굴이 좀 무섭게 보이지요? 하지만 절대로 누구를 물지 않을 사람 같아요.” 총회장 장내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1시간가량 ‘옆사람 소개’ 순서가 시끌벅적하게 흐른 뒤 3시가 다 되어서야 총회 본행사는 본격 시작됐다. 전체 조합원 252명 중 66명(위임 78명)이 참석한 ‘제3차 땡땡책협동조합 정기총회’다. 본행사 시작은 협동조합 총회도 여느 주주총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땡땡책협동조합의 지난해 사업 현황과 재무제표를 발표하고 또 승인받고, 그동안 진행한 사업들의 성과와 과제들을 참석한 조합원들에게 공개했다. 하지만 이런 공식 순서가 끝나자 조합원 총회장은 주주들이 모인 총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총회장에 앉아 있는 조합원들이 각자 손을 들고 발언에 나서기 시작했다. “예년과 달리 조합원들이 지난해 우리 자체적으로 소책자를 발간하지 못해 아쉬웠다.” “활발하게 활동한 독서모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독서모임도 적지 않았다. 반성이 필요하다.” 1시간여 열띤 토론이 끝나자, 이제 한숨 돌려야 할 차례가 왔다. 조합원들이 직접 마련한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짧은 듯 아쉬움 속에 노래가 끝났다. 이어 2016년 사업계획이 발표됐다. 다소 무미건조한 사업계획 설명이 끝나자 총회장은 다시 달아올랐다. 제출된 사업계획에 대한 갖가지 의견이 여기저기 쏟아져나왔다. “온오프라인 소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조합원 교육을 더 넓혀야 한다”, “여러 독서모임의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 10여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새 이사 선출까지 완료됐을 때는 어느덧 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3시간여에 걸친 총회는 그제야 끝났다. 40여명은 근처 어느 밥집 뒤풀이 장소로 옮겼다. 몇몇은 밥을 먹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일부는 이튿날 새벽까지 남았다. 사실상 새벽까지 총회가 이어진 셈이다.

하루 전날인 11일 오전 8시30분 서울에서 열린 어느 대기업 주주총회장. 총회가 시작되기까지 아직 30분 남았지만 150석 강당은 이미 가득 채워졌다. 회사 쪽이 동원한 직원들이 아닐까 궁금했다. 9시가 되자 주총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내외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 높은 경영성과를 얻어냈다”는 대표이사 인사말이 끝나자 재무제표 등 의결 안건들이 차례로 올라왔다. 짧은 안건 설명이 끝나고 나면 이미 약속돼 있던 한 주주가 일어나 “꼼꼼히 살펴보니 문제없다. 원안 통과에 동의한다”고 선창한다. “재청합니다.” 다른 주주들이 일제히 외쳤다. “이의 없습니까?” 사회자의 형식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곧바로 ‘통과’가 선포된다. 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구성, 이사 보수 안건도 엇비슷한 과정을 거쳐 처리됐다. 주주총회는 30분 만에 끝났다. ‘2015년 상장사 주주총회 백서’를 보면 상장사의 정기·임시주총 평균 소요시간은 33.1분이다.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처럼 협동조합 역시 회계연도를 마치고 통상 3개월 안에 조합원 총회를 연다. 지난 1년의 사업을 결산하고 임원을 선출하고, 올해의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받는다. 즉, 의결 안건은 주주총회와 유사하다. 그러나 의결권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주총회에선 1주가 1표를 갖는 반면, 협동조합 총회에선 1인 1표를 행사한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모두 동등한 단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 이 원리가 주총과 협동조합 총회의 풍경을 사뭇 다르게 만들어낸다. 협동조합 총회는 조합원들 간의 만남의 장이자 논의의 장이다. 가진 돈(지분)의 크기로 의결권 대결이 벌어지는 주식회사와 달리 사람이 중심이고, 의결 결과 못지않게 논의 과정도 중요하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게 협동조합 총회의 목적이기도 하다.

땡땡책협동조합의 경우 이번 총회를 열기 전에 사무국 직원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조합원 86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총회에서 다뤄주었으면 하는 안건들을 미리 듣기 위한 자리였다. 이렇게 수렴된 다양한 의견들이 12일 총회장에서 소개됐다. 민주적인 협동조합 총회라 하더라도 총회를 열기 전에 착실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총회 교육전문가인 송문강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이사는 “조합원들이 서로 함께 만나 결정한다”는 협동조합 총회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도 이런저런 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협동조합은 이런 문제를 누구나 동등한 의결권을 가진 조합원들이 ‘함께’ 풀어가는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총회는 조합의 1년 살림살이를 다시 살피고 문제들을 ‘드러내고 풀어가는’ 자리다. 송 이사는 “총회 당일보다 준비 과정이 더 중요하다”며 “적어도 총회 시작 1개월 전에는 차근차근 총회 준비 과정에 들어가고, 총회에서 어떤 논의를 할 것인지 조합원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수나무’로 유명한 400억원 매출의 외식프랜차이즈 중견기업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다. 2013년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노동자들은 1인 1표로 사업계획을 결정한다. 정기총회에서 조합원들은 목걸이 명패를 들어 올려 상정 의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표시한다. 총회를 위한 준비 모임, 교육, 각종 소모임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협동 과정’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총회는 조합원 각자가 가진 자원들을 공유하며 공동의 사업을 모색하는 자리다. 출자금만 냈다고 해서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이소영 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전 이사장은 “조합원의 필요와 욕구는 조합원 총회 같은 민주적 행사 등을 통해 모두가 함께 채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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