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동부죠? 대기업 단체협약의 이른바 ‘고용세습’ 조항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기자) “모릅니다. 기업들이 인사사항을 알려주겠습니까?”(노동부) “해당 기업이나 노조는 거의 없다는데요?”(기자) “……”(노동부) “많은 언론들은 마치 이 조항을 청년 취업난의 주범처럼 보도하는데, 근거가 없는 셈이네요. 정부가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기자) “(당황하며) 그렇지 않아요. 28일 발표 때 기자들에게 이 조항으로 입사한 사람은 확인할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29일 노동부 간부와의 통화내용이다. 노동부는 전날 100명 이상 노조가 있는 2769개 사업장의 단체협약을 조사한 결과 이른바 ‘고용세습’으로 지적받는 ‘(산재자·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담은 단협이 25.1%이고, 민주노총 사업장과 대형 사업장은 35%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기득권 노조에 만연한 ‘고용 세습’ 시급히 철폐해야.” 일부는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고용 세습, 실업 청년 희망 빼앗는다.” “내 자식 우선 뽑아달라, 고용세습 주도한 민노총” 하지만 해당 기업 노사의 말을 종합하면 ‘고용세습’ 조항의 혜택을 받아 입사한 사람은 거의 없어 사실상 ‘사문화’ 상태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현대기아차의 한 고위 임원도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한국경제의 최대 현안인 청년실업의 주범으로 지목된데는 사실확인 노력을 제대로 안한 언론의 책임도 크지만, 1차 원인제공은 정부가 했다. 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최근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인 12.5%에 달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고용세습으로 비판받는 ‘우선·특별채용’ 조항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론의 ‘과장보도’를 유인했다.
발표시점도 의문이다. 정부가 실태조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상반기다. 지난 10개월 간 무엇하다가 총선을 앞두고 불쑥 발표했을까? 야당은 총선 핵심 의제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 심판론을 꺼내들었고, 그 주된 근거가 청년 취업난 등 일자리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인 경제민주화마저 포기하며 대기업 위주의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지만, 3년간 평균 청년실업률은 8.7%로 이명박 정부 때의 7.7%보다 더 나빠졌다. 정부가 일자리 책임을 민노총 계열 대기업 노조로 돌리려는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도 해당 조항이 시대흐름이나 국민정서에 맞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사를 오랫동안 맡았던 4대그룹 한 임원은 “회사일과 관련해 죽거나 다친 직원의 자녀를 생계지원 차원에서 우대할 수는 있지만, 장기근속자나 정년퇴직자까지 특혜를 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노사문제까지 악용하는 상황이다. 노조는 정부를 탓하기 앞서, 문제소지가 있는 대목은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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