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0일 기준금리 추가 인하 등 적극적 통화 완화 요구에 대해 “우리는 여러 면에서 선진국과 다르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또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애초 예상한 3%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이날 취임 2돌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정책이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은행도 완화 기조를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우리 경제의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 경제 상황에 부합되는 기준금리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축통화국들과는 달리 정책 기조 완화에 따르는 자본 유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며 “표면적으로 완화 정도가 덜하다고 해서 우리 통화정책이 경제의 회복세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지금 기조를 이어가되 성장세와 물가 등 지표를 중심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연초의 불안에서 벗어나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면서도 “대외 수요 부진 등 기준금리의 효과를 제약하는 근본적 요인과 금융 안정 측면에서 가계부채 문제 등이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시장에서는 다음달 4명이 교체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 후보들이 통화 완화론적 입장을 보일 것이라는 점, 새누리당이 29일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건 점을 근거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퍼졌었다.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은 “대내외 여건을 종합해볼 때 연초에 전망한 3%를 다소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1월에 ‘경제 전망’에서 3.0% 성장을 예상했는데 다음달 수정 전망에서 이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한은 쪽에서 올해 성장률이 3%를 밑돌 수 있다는 공식 언급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재는 2월 이후 수출 감소세가 줄고 소비자심리지수도 개선돼 경기에 대한 우려가 다소 완화됐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은이 돈을 새로 발행해 산업은행 채권이나 주택저당증권을 직접 인수하게 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양적완화’ 공약에 대해서는 “한은이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 하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은행이 특정 정당 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다만 한은도 경제가 활력을 회복하도록 하고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양적완화를 한 국가들과 한국의 사정이 다르다는 언급까지 감안하면 ‘한국판 양적완화’에 부정적 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전날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 말고 뭣을 했냐’는 취지로 말한 것에 대한 반론으로도 들린다. 한은 내부에서는 양적완화는 발권력 남용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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