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부총리(가운데)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한 해 나라빚이 57조원 남짓 불어나는 등 재정 상황이 한층 나빠졌다.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재정 투입이 늘어난 때문인데 정작 경제성장률(실질)은 2.6%에 머물며 한 해 전(3.3%)보다 뒷걸음쳤다. 경기의 마중물 구실도 제대로 못한 채 재정만 악화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수 확충은 게을리하면서 ‘재정 건전성’ 도그마(독단)에 갇힌 결과라고 꼬집는다.
정부는 5일 국무회의를 열어 ‘2015회계연도 국가 결산’을 심의·의결했다. 결산 자료를 보면, 국가채무(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채무·D1)는 590조5000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57조3000억원 불어났다. 수입에서 지출을 뺀 재정수지(관리재정 기준)도 38조원 적자로 나타났다. 한 해 전보다 늘어난 적자 규모는 8조4000억원이다.
재정 건전성의 잣대로 삼는 ‘국가채무 비율(국가채무/국내총생산)’과 ‘재정적자 비율(재정적자/국내총생산)’도 한 해 전보다 각각 2.0%포인트, 0.4%포인트씩 뛰어올랐다. 청년 실업률(2월 현재 12.5%)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성장률(3.3%→2.6%)이 뒷걸음치는 등 현재 경제 여건을 염두에 두면, 이런 재정 악화는 정부가 나랏돈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세금을 적게 걷어서 빚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한겨레>가 파악한 지난해 조세부담률은 18.5%(잠정)로 한 해 전보다 0.5%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지난해 1월 담뱃값 인상(2000원)에 따라 늘어난 조세 수입(2조4000억원)을 빼면 조세부담률은 18.3%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영국(26.5%·2014년 기준)·프랑스(28.2%)·독일(22.1%) 등 주요국에 견줘 크게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6.1%로, 우리보다 7.6%포인트 높다. 이는 이명박 전 정부의 감세 정책에 이어 현 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 기조에 갇혀 세수 확충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는 “현 정부 들어 사라진 세입 정책 탓에 재정의 건전성은 훼손되면서 동시에 경기 보완 구실도 취약해졌다. 재정 정상화를 위해선 조세부담률을 최소한 2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전망’이 크게 엇나가고 있는 것도 재정이 난맥상을 보이는 원인이다. 정부가 2014년 9월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예산안’은 지난해 실질성장률을 4.0%로 전망하고 편성됐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경기가 둔화되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으로 경기가 더 얼어붙으면서 정부는 같은 해 7월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을 편성해야 했다. 추경은 편성 시간이 본예산보다 짧아 재정 지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국채 발행으로 충당되는 터라 국가 채무 증가로 이어진다. 예산을 추가로 투입했음에도 지난해 실질성장률은 2.6%에 그쳤다.
지난해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주요 국가에 견줘 우라나라 재정은 매우 건강한 편이다.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은 빚을 내서라도 지출을 늘려 경기 대응에 적극 나선 반면, 우리나라 정부는 ‘재정 건전성 유지’를 앞세워 소극적 재정 운용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200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8년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9.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오이시디 회원국은 평균 40.7%포인트 뛰었다.
이런 재정 운용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가 가계와 기업 빚의 폭증이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니 가계와 기업이 모자란 소득과 이윤을 메우려 빚을 낸 탓이다. 같은 기간(2008~2015년) 가계 부채 비율은 13.6%포인트, 민간 기업 부채 비율은 17.8%포인트 급등했다.
정성태 엘지(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정 당국이 2008년 위기 이후 달라진 대내외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재정건전성 도그마’에 빠진 듯한 재정운용을 하고 있다.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되는 등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을 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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