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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이제는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를 볼 때

등록 2016-04-07 18:47수정 2016-04-07 18:47

HERI의 눈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이다.” 식료품상의 딸에서, “여성은 결코 돌아서지 않는다”는 뜻에서 ‘철의 여인’이 된 마거릿 대처. 그가 1987년에 한 이 말은 사회에 대한 경제의 지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저성장이 하나의 체제로 굳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사회’를 재발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1980년대 ‘종속 심화, 독점 강화’가 한국 경제의 성격을 설명하는 테제로 유행했다면,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운명적인 ‘저성장 체제’가 또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성격으로 등장하고 있다. 양적인 통화 완화, 재정의 적극적 역할 등 저성장 체제를 극복하려는 정책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경제 분석가들마다 말씀을 전해주는 모세처럼 분주하게 정책을 발언하고 있지만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늘 빈곤하다. 사회는 이윤과 이익을 넘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불평등을 낳는 권력의 문제를, 그런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한 집단·세력 간 힘의 관계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도 곤경에 처해 있다. 자살률·출산율·노인빈곤·청년실업 등 사회지표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는 곤경을 넘어 비참하다. 이런 팍팍하고 고단한 사회문제를 파생시켜온 경제는 이제 당황해야 한다. 겁을 집어먹어야 한다. 우리가 항상 경제에서 찾고자 했던 행복은 당혹스럽게도 미로 속에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상품생산 경제는 ‘여왕’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는 길을 잃었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경제는 번영했고 집합적인 행동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끌어내렸으나 또다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단지 옛 체제를 단절하는 데 그쳤다. 지난 30여년 동안 많은 일이 우리를 거쳐갔으나 지금 과연 우리는 사회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경제는 항상 우리가 추구해온 정책의 선두 지위를 누려왔다. 경제의 빛을 통과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의심해왔다. 수학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수학의 추구는 인간 정신의 신성한 광기라는 것을 인정하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경제 역시 광기였다. 그러나 틀림없이 신성한 것일까. 의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는 귀중한 보석일지 모르나 완벽한 보석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오히려 닦을수록 더 많은 사회적 흠들을 파생시켜온 건 아닐까. 경제가 사회와 충돌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아직 경제적 번영의 낙원에 살고 있다”고 짐짓 가짜 행복감을 느껴온 건 아닐까?

적어도 한국에서 경제와 정치는 둘 다 ‘최적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통한 성장’만을 추구해왔다는 점에서 마치 이란성쌍둥이 같았다. 더 많이 생산할수록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경제적 번영의 교의는 마치 신학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가 정말로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했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의문은 왜 오늘날 우리들이 그것을 견고하게 믿고 있는가에 있다. 경제적 번영에 대한 믿음은 오래전에 유효성을 잃은 것으로 판명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경제학은 내팽개친 채 여전히 자만심에 취한 경제학만 배우고 있다. 사회가 허물어질 때 경제는 훨씬 더 빨리 늙고 쇠락해간다. 사회를 보듬지 못하는 경제는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지금은 최선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 기획, 다시 말해 경제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이상과 소망은 경제가 아니라 사회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로렌스가 사막 모래바람 속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달이 뜨고 다시 질 때까지 밤새도록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 나온다. 저성장 모래바람 속에 식어가는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는 정치적 경제 정책에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사회’에 몰두하는 고민이다. 대처의 말은 의심할 바 없이 수정되어야 한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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