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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외부감시 꺼리다 끝내 ‘채무불이행’ 현대상선의 ‘자업자득’

등록 2016-04-10 20:30수정 2016-04-10 20:45

현대그룹. 사진 연합뉴스
현대그룹. 사진 연합뉴스
공모사채 못갚아 신용등급 D 강등
원리금 미지급 사채만 8099억원

은행과 재무개선약정 필요했지만
돈 빌려 사업확장한 현 회장 거부
전문경영인들도 이의제기 힘들어
전문가 “회장 경영방식 예정된 실패”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8일 현대상선의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CCC’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 등급인 ‘D’로 내렸다. 한국신용평가도 ‘CCC’에서 ‘C’로 낮췄다. 전날 만기가 돌아온 무보증 공모사채 1200억원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전날 기한이익이 상실돼 원리금이 미지급되는 사채가 8099억원이라고 공시했다. 기한이익은 빌린 돈을 만기 전까지 자유롭게 쓸 권리를 말한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짊어진 부채는 1조2000억원 규모이지만, 공모사채 발행 등으로 사채권자들에게 진 빚은 3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상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과거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 역시 “현대상선이 과거 외부 감시를 받기 싫어하면서 자초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이 말하는 과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중앙지법은 2010년 9월 현대상선 등 현대 계열사들이 신규 여신 중단 등 채권단이 내린 제재를 풀어달라며 제기한 결의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도록 압박했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고 현대그룹은 가처분소송을 제기해 약정을 맺지 않았다. 이후 은행 차입금을 줄이고 높은 금리의 회사채를 발행해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은행 차입금을 늘리면 채권단 감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7일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 1200억원도 2011년 4월 이자율 6.05%를 약속하고 발행한 것이다.

외부 감시를 거절한 것은 현정은 회장의 확장 경영 탓이 크다. 현 회장은 2010년 매물로 나온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은행 통제하에서는 어려웠다. 또 돈을 빌려 리조트·호텔·저축은행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 역시 채권단 통제가 있었다면 실행이 어려웠다. 그런데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하는 등 손을 댄 사업은 대부분 실패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현대아산이 추진하던 리조트 사업이 어려워지자 2012년 현대상선(729억원)과 현대엘리베이터(261억원) 등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계열사 부담은 더욱 커졌다. 2012년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증권·로지스틱스 등 계열사 4곳이 남산반얀트리호텔을 인수하려고 특수목적법인인 현대엘앤알에 990억원을 출자했다. 하지만 호텔 사업은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엘앤알 지분 49%(441억원)를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에 254억원을 받고 넘겼다. 글로벌 해운업 불황으로 아시아~유럽 콘테이너 운임이 2010년 2500달러에서 올해 250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힘겨운 현대상선은 현 회장의 무리한 경영까지 지탱하려고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야만 했다. 2011년 이후 계속된 적자로 신용등급은 떨어져 최고 10.71%의 고이율로 회사채를 발행해야만 했다.

현 회장은 2003년 취임하면서 “전문경영인 책임 경영 체제로 운영하고, 투명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은 아니었다. 현대그룹의 전 임원은 “회의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는 내용이 경영 안건으로 나와 있고 이미 결정된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숨은 실세’라는 황아무개 아이에스엠지(ISMG)코리아 대표가 결정한 것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회사를 통해 현대그룹의 경영자문·광고·부동산중개 등을 맡았다. 현대그룹의 자금 부담을 가중시킨 리조트·호텔 사업에도 그가 보유한 회사들이 참여했다. 그는 2014년 자신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는데, 여전히 현대그룹에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에 2014년 매각된 현대로지스틱스 관계자는 “2014년에만 아이에스엠지코리아에 준 광고 물량이 100억원이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분담했고, 지난해와 올해에도 같은 형식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2008년 현대아산 채무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부한 김아무개 당시 현대택배(현 현대로지스틱스) 대표는 사표를 써야 했다. 김 대표는 현 회장이 직접 찾아와 지급보증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그사이 현 회장은 계열사 여러 곳의 등기이사로 재직하며 고액 연봉을 받았다. 2014년 38억여원, 2015년 45억여억원을 받았다. 현대그룹의 또다른 전 임원은 “현 회장이 하이닉스로부터 당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고 정몽헌 회장한테서 물려받은 400억원 가까운 채무가 있어, 한때 많은 급여를 받아간 것은 그룹 임직원들의 이해가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계속 받아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이면에서 현대상선의 임직원 수는 가장 많았던 1999년 394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55명(2015년 말)으로 쪼그라들었다. 남은 직원들도 대부분 다섯 차례 유상증자 참여로 수천만원씩 빚을 졌다.

산업은행은 지난 4일 자금관리지원단을 파견해 현대상선 유동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말 채권단 중심의 자율협약 합의에 따른 것이다. 현대상선이 재무개선약정을 거부한 지 6년도 되지 않아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경영 경험이 없는 현 회장이 큰 그룹의 의사결정자로 나선 것은 예정된 실패였다. 재무개선약정 거부로 우량 계열사로까지 부실이 확대되게 하면서도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요 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정훈 박승헌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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