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 경제 설명회에 참석해 글로벌 금융기관 경제분석가, 해외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발표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격변기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봅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 뒤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 첫 장을 대형 화면에 띄웠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고 인구가 2000만명이 넘는 나라들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담은 그래프였다. 성장률이 가장 낮았던 일본(0.5%)이 맨 왼쪽에, 스페인(3.2%)은 가장 오른쪽에 자리잡았다. 한국(2.6%)은 스페인 바로 왼쪽을 차지했다. 비교 대상국 중 두번째로 성장률이 높다는 의미다.
12일(현지시각) 세계 금융 중심지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한국 경제 설명회(IR)가 열렸다. 발표자는 유 부총리였고, 그의 앞에는 윌리엄 콘웨이 칼라일그룹 회장을 비롯해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경제분석가와 자금 운용자 200여명이 자리했다. ‘홍보’가 목적인 터라 유 부총리는 우리 경제의 장점을 강조했고, 월가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놓치지 않았다.
유 부총리는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가 선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장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수출 부진을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한국 경제가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올해 들어 주요국 통화가 큰 폭으로 약세를 보였지만 원화의 절하 폭(6.3%)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며 “이는 국가채무 비율이 40%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시장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유 부총리가 피하고 싶었을 법한 주제를 건드렸다. 우선 정부가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3.1%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지와 북한 리스크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유 부총리는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큰 편인데 이런 불확실성을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재정 여력이 큰 덕택에 3%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거나, “북한 리스크는 한국 경제에 이미 내재화돼 있는 위험 같다.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응수했다.
12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도 월가의 관심이었다. 유 부총리는 “규모 자체가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추진하면서 고정금리나 분할상환 대출 비중이 최근 크게 늘었으나 근본적 해법은 경제가 활기를 띠어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의 한 금융인은 “세계 무역 거래 자체가 줄고 있어서 한국으로선 앞으로도 수출이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유 부총리는 “그런 측면이 있다. 수출 지역과 품목 다변화를 적극 추진해 수출 부진에서 벗어나겠다”고 답했다.
한편 유 부총리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대외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면 “추경 편성에 의존하거나 다른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 전제조건으로 중국 경제의 악화나 일본·유로존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지속을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3.2%로 하향 조정하고 정치권도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총선 뒤 추경 편성 논란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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