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25일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은 추상과 같았다”며 “우리는 유능한 경제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광주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경제에만 구조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도 구조조정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당이 경제분야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시대가 됐으니 그에 걸맞은 태세를 갖추자는 뜻으로 읽힌다.
김 대표가 꺼낸 ‘유능한 경제정당’론은 문재인 전 대표도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3월 문 전 대표는 “우리 당은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서 서민경제를 지켜낼 것이다. 민생을 지키는 정책정당이 돼서 국민의 희망이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을 계기로 민주당이 유능한 경제정당이 되면 좋겠다. 그동안 민주당은 경제문제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슈를 선도하거나, 정교한 논리로 현안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는 정도 차이가 있지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조금 달라질 낌새를 보이고 있다. 총선 직후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들고 나와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돼도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부작용을 지적하는 데 머물곤 하던 것과 대비가 된다. 이번에는 선수를 쳐서 구조조정 현안을 다룰 여야정협의체 출범과 관련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당 차원에서 경제정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경제특별위원회(가칭) 설치도 추진중이다. 이런 경제정당으로의 변화를 이끄는 게 바로 김 대표다. 그가 일부 사안에서 ‘오버’하고 권위주의적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나는 김 대표에 대한 이런 평가에 공감하면서도 몇가지 걱정이 든다. 먼저 재벌개혁에 대한 그의 발언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의 하나인 그가 재벌개혁이란 말을 쓰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어서다. 그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회견에서 “일각에서 경제민주화를 자꾸 재벌개혁과 동일시해 흑백논리로 몰고 간다. 난 한 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자꾸 오해를 부추기니까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19일 <서울신문> 회견과 2012년 대선 직전에 낸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에서도 그는 비슷한 취지의 얘기를 했다. 문제는 재벌개혁을 뺀 상태에서 경제민주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있느냐다. 당장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과 무관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것 같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양극화 해소, 대기업과 중소(견)기업 공생, 포용적 성장이 이뤄지려면 재벌개혁이 긴요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그가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재벌개혁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김 대표가 제시하는 경제민주화론의 한계라고 예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김 대표가 경기부양 정책에 부정적인 점도 걸린다. 그는 현 정부가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순환형으로 접근하다 보니 돈만 많이 들어가고 (정책)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소홀히 한 채 구조조정에 치중하면 그 여파가 간단치 않을 수 있다. 경기 부진의 그늘이 짙어지고 서민층과 중산층이 그 부담을 더 느끼기 마련이다. 올해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2.7%에 그쳤다는 한국은행 발표를 예사롭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김 대표가 한국판 양적완화론에 비판적인 대목도 그렇다. 김 대표 말마따나 양적완화가 돈을 풀어서 경기를 떠받치는 식으로만 진행된다면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조정을 위한 선별적 양적완화론 등이 그것이다. 김 대표가 이런 논의를 계속 거부한다면 중요한 정책대안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싶다. 내 지적이 군걱정이길 바란다.
이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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