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도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용선료(선박 임대료)를 인하하고, 회사채 채무를 조정하며, 해운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조건이다.
산업은행 등 한진해운 채권단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열고 “용선료 인하와 회사채 채무 재조정, 해운동맹 유지를 조건으로 모든 채권금융기관들이 자율협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금융권 차입금 원리금 상환을 3개월 유예하고 외부 기관을 선정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자율협약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용선료 인하와 사채권자 등 모든 채권자들이 참여하는 채무 재조정을 조건으로 추진된다. 여기에 국제 해운동맹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추가됐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 가운데 하나라도 무산되면 자율협약은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자율협약이 중단되면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크다.
용선료 인하와 사채 채무 조정은 채권단의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세 달 안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8월 초까지는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용선료 인하 요구 수준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30~35%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진해운의 직접 계약 용선료가 1조1469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3440억~4014억원가량 줄여야 한다. 한진해운의 용선료 인하 협상은 현재 진행 중인 현대상선의 협상 결과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두 해운사의 선주업체들이 다수 중복되기 때문이다.
사채권자 채무 조정도 간단치 않다. 한진해운의 총부채는 6조6천억원, 차입금이 5조6천억원인데, 이 가운데 금융권 차입금은 7천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금융권 차입금보다 훨씬 많은 회사채 1조5천억원, 선박금융 3조2천억원 등의 채무 조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대목은 총부채 5조5천억원, 차입금 4조8천억원 가운데 금융권 차입금 1조1천억원, 회사채 1조8천억원, 선박 금융 1조9천억원인 현대상선보다 약간 불리한 대목이다.
재편 중인 세계 해운동맹에 참여하는 것 역시 필수다. 채권단이 양대 해운사와 모두 자율협약을 맺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해운동맹 잔류 또는 가입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경우 기존에 참여했던 CKYHE 해운동맹은 중국과 대만 업체가 빠져나가 와해 분위기다. 따라서 새 해운동맹을 찾아야 한다. 반면 현대상선은 기존에 가입된 G6가 독일의 하팍로이드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서 해운동맹 가입이 좀 더 유리하다. 한진해운도 이 동맹 참여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은 채권단과의 사전 조율 없이 지난달 22일 자율협약을 신청했다가 보완을 요구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자율협약 신청 직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조양호 현 회장의 사재 출연 조건도 포함되지 않아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 현대상선은 20일께로 설정된 용선료 협상 시한을 앞두고 외국 선주들과의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현대상선 협상단은 용선료가 인하돼야 회사가 존속할 수 있다며 선주들을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4일에도 “용선료 협상이 잘 안 되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규원 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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