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경영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크고 자본확충이 절실한 만큼 성과연봉제 도입 등 철저한 자구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중략)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10일 열린 금융 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서둘러 달라면서 한 말이다. 특히 산은·수은을 향해서는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의 부실 악화에도 책임이 큰 만큼 임금 반납과 같은 고통 분담을 주문하기도 했다. 산은·수은의 곳간이 바닥난 건 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 지원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빈 곳간을 자본확충으로 채워주기에 앞서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두 은행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금융위다. 금융위 역시 두 은행의 건전성 악화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우선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금융위는 2013년부터 대우조선해양 지분 12.2%를 보유하고 있으나 주총에서는 늘 회사 쪽 안건에 찬성했다. 2014년 3월 주총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은 임원이 대우조선의 감사에 임명되면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베어링자산운용 등 23곳의 기관투자자가 반대 의견을 냈으나 금융위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듬해 주총에서 1인당 임원 보수 한도를 6억6700만원에서 7억5천만원으로 인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난의 여지가 더 큰 건 금융위가 산은에 전문성 없는 회장을 임명한 주체였다는 점이다. 정책금융 경험이 전무한 홍기택 전 회장과 이동걸 회장을 임명해달라고 대통령한테 제청한 기관이 바로 금융위다. 금융위는 그 과정에서 산은 내부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산은 수석부행장 등 등기이사 2인과 감사 임명권도 금융위원장이 행사한다.
두 은행의 부실을 악화시킨 책임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산은·수은의 부실이 커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10월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천억원 지원 결정이다. 지금까지 운영자금 2조8천억원이 지원됐고 4천억원의 유상증자도 이뤄졌다. 앞으로도 1조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 이 결정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한 이른바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내려졌다. 산은이나 수은이 “정부 정책을 따른 것일 뿐”이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근거다.
임 위원장은 최근 언론사 경제부장 간담회에서 금융위 책임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나 이덕훈 수은 행장이 임 위원장 앞에서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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