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욱 공정거래위원회 서비스업감시과장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총수 친족 회사를 지원해준 현대증권 및 현대로지스틱스 등에 시정명령과 함께 12억8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일감 몰아주기’ 사실상 면죄부
10~45% 비싸게 ‘일감’ 줘 60억 지원
총수일가 형사고발은 안해
공정위 “총수 지시 확인 못했다”
한진·한화 등 조사 앞두고
총수일가 제재 ‘이빨 빠진 호랑이’ 될판
10~45% 비싸게 ‘일감’ 줘 60억 지원
총수일가 형사고발은 안해
공정위 “총수 지시 확인 못했다”
한진·한화 등 조사 앞두고
총수일가 제재 ‘이빨 빠진 호랑이’ 될판
공정거래위원회의 현대그룹 일감 몰아주기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 지난해 2월 발효된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회사 이익 가로채기) 금지’ 조항이 적용될 첫 사례로 관심을 모았지만, 형식상 적용됐어도 실제로는 무의미한 기묘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한진·한화·하이트진로·씨제이(CJ) 등에 대한 조사도 앞둔 공정위의 제재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현대그룹이 현 회장 동생인 현지선씨, 그 남편 변찬중씨, 이들의 두 아들이 지분 90~100%를 보유한 쓰리비·에이치에스티(HST)에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일감을 준 사실을 밝혀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2012년 5월 당시 1년 정도 남은 기존 거래처와의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쓰리비와 3년간 택배운송장 공급 계약을 맺었다. 2009년 외국 정유업체 대행사를 하려고 문을 연 쓰리비는 택배운송장 사업 경험이 없는데도 다른 택배회사보다 12~45% 비싸게 계약을 맺었다. 쓰리비는 인쇄업체를 통해 택배운송장 ‘구매대행’을 하며 3년간 56억2500만원어치의 계약을 맺었다. 택배운송장은 발송인·수취인 등의 정보를 적어 화물 행선지를 밝히고 거래 내용을 입증하는 자료다.
현대증권은 2015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제록스와 직접 계약하면 대당 월 16만8300원에 빌릴 수 있는 복합기 154대를 에이치에스티에 10%를 수수료로 주고 18만7천원에 납품받는 등 모두 4억6천만원어치의 계약을 맺었다.
이 중 현대증권-에이치에스티 거래는 총수 일가(특수관계인)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규정한 공정거래법 23조의 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가 적용된 첫 사례다. 총수 일가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게 이 조항의 핵심인데, 기존처럼 총수 전횡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 기업만 제재해서는 효과가 없다는 여론이 높아 신설된 조항이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 일가가 자신들이 지분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을 가진 업체와 ‘정상적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 등이 제재 대상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업체들에는 과징금을 매기면서도 지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며 현 회장 일가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아 이 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정창욱 공정위 서비스업감시과장은 “특수관계인이 직접 사익 편취 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현대로지스틱스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시장에 끼친 폐해가 크다”며 고발하기로 했지만, 역시 현 회장 일가는 고발 대상에서 뺐다. 새 조항이 발효된 2015년 2월 이후 일로만 총수 일가를 처벌할 수 있는데, 계약은 2012년에 이뤄졌고, 현대로지스틱스가 2014년 롯데그룹에 매각됐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기존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조항을 적용해 회사만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본질이 같은 두 사안은 현대그룹이 위기를 겪는 중에 총수 일가와 관련된 배임에 가까운 행위가 일어났는데도 법인만 책임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현대로지스틱스가 고발당했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현 회장 일가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