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젊은이들의 소비 트렌드를 읽으면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이 보인다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바로 ‘2030 세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젊은층의 소비 트렌드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다. 저성장 시대 취업난에 허덕이며 다른 세대에 견줘 가처분소득이 훨씬 적은 2030세대한테는 가장 적은 돈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게 소비의 으뜸 전략이 됐다. ‘플랜Z’는 이런 실속형 소비 전략을 일컫는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김난도 교수 등이 쓴 ‘트렌드 코리아 2016’을 보면, 플랜A(최선)도 플랜B(차선)도 아닌, 최후의 보루를 선택하는 소비 패턴을 ‘플랜Z’라고 설명한다. 예컨데 조금 흠이 있는 B(비)급 상품이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싼 값에 구입하는 소비유형이다. 나아가 무의미한 브랜드 값 또는 허세에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가치 중시 소비’, 거품을 제거한 ‘실용적 소비’를 뜻하기도 한다. 대신 진짜 좋아하는 것엔 아낌없이 돈을 쓰는 ‘작은 사치(스몰 럭셔리)형’ 소비스타일일 수도 있다.
플랜Z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2030세대의 소비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플랜Z’는 무엇일까? <한겨레>는 매주 한차례 ‘플랜Z’ 소비의 행태와 흐름을 소개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인 30대 여성 정아무개씨는 편의점 마니아다. 서울 홍대 앞 1인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싱글 생활을 하다 보니 대형마트는 거의 갈 일이 없지만, 편의점은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자주 찾는다. 웬만한 먹을거리나 생필품은 사무실 주변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어서다. 정씨는 “최근에 온라인에서 현금처럼 쓰는 천원짜리 모바일상품권을 ‘1+1’로 샀다”며 “이런 상품권으로 빙그레 바나나우유 편의점 교환권을 살 경우 손쉽게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바일 간편결제가 워낙 쉬워져서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고도 했다.
1인가구 급증 따라 편의점 새 활기
‘가깝고 소량 구매’ 장점 말고도
다양한 할인쿠폰 나와 값도 저렴
스마트폰 활용하면 결제도 간편
전용 소액상품권도 반응 좋아
최근 뽐뿌 등 2030세대가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엔 편의점 게시판이 아예 따로 있어서 이른바 ‘소액 득템기’를 공유하고 알짜 정보들을 주고받는다. 누리꾼들은 “티끌 모아 티끌” “흙수저의 기쁨을 이부진은 알까” 등 ‘웃픈’ 반응을 보이면서도 ‘편의점 라이프 비법’에 크나큰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만혼과 비혼 등으로 기나긴 싱글 시절을 보내는 사회 세태 속에서 편의점은 드물게 소비침체를 비켜가고 있다. 여기엔 1인가구, 싱글세대의 취향에 걸맞은 상품 트렌드를 잘 짚어내고, 스마트폰 보편화와 모바일 간편결제 확산에 재빨리 올라탄 전략이 주효했다. 스마트폰 가입자 규모는 지난 3월 현재 4448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삼성페이·카카오페이·쓱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도 대중화했다. 편의점에서 모바일 소액상품권과 상품교환권이 수백가지로 다채로워진 배경이다.
최근 편의점은 가격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편의점은 원래 대형마트에 견줘 거리가 가깝고 소량 구매가 쉬운 게 강점이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미끼 상품으로 편의점용 소액상품권이나 상품교환권을 적극 활용하면서 싸게 살 통로가 많은데다 중고매매 사이트에서 개인 간 할인 거래도 손쉬워 가격경쟁력이 높다. 또 매장을 방문하면 날마다 달라지는 할인 정보와 쿠폰을 스마트폰으로 곧바로 쏴주는 ‘비콘 서비스’까지 발달하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플랜제트(Z)세대의 발길을 끌 경쟁력을 갖췄다.
편의점 상품교환권은 애초 빙그레 바나나우유, 숙취해소 음료인 컨디션, 비타500같이 가볍게 주고받는 선물용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요즘은 직접 소비하려고 사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모바일 상품교환권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은 업계 1~3위인 씨유(CU), 지에스(GS)25, 세븐일레븐이 각각 48.5%, 53.4%, 22%에 이른다. 편의점은 모바일 교환권 발행과 판매를 위해 에스케이플래닛(기프티콘)·케이티엠하우스(기프티쇼) 등 대기업 통신 계열사나 카카오, 티몬, 옥션 등 다양한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
상품교환권 종류만 해도 씨유는 200여개, 지에스25는 400여개, 세븐일레븐은 500여개다. 에스케이플래닛 홍보팀의 이교택 매니저는 “2014~2015년 모바일 간편결제가 쉬워지자 편의점 상품교환권을 자기가 소비하려고 사는 수요도 많아졌다”며 “올해 들어 세븐일레븐의 ‘혜리 11찬 도시락’ 교환권 등이 인기품목 10위권에 새로 올라왔는데,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짚었다.
2030세대는 편의점 상품교환권뿐 아니라 소액상품권의 구매와 사용에도 적극적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10만원권, 5만원권 등 고액권 위주라면, 편의점 상품권은 1만원권부터 천원권까지 다양한 소액권이 나와 있다. 씨유 쪽은 “지난해 편의점 전용 모바일 상품권 매출이 연간 29.7% 증가했다”며 “1만원권이 40%, 5천원권이 35%, 3천원권이 20%를 차지할 정도로 소액권 비중이 높다”고 전했다. 케이티엠하우스 쪽은 “최근 편의점용 소액상품권 판매에서 2천원권이 86%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는데, 편의점용 소액상품권에 대한 소비자 호응이 좋아서 기업들이 프로모션용으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대학생인 정희윤(20)씨는 “편의점은 ‘2+1’ ‘1+1’ 행사도 많고, 이런저런 할인에 통신사 멤버십 혜택을 중복해 받을 수도 있다”며 “잘 활용하면 대형마트보다 비쌀 것도 없어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다양해지는 PB…대표 상품은 ‘도시락’
올해 5천억원 규모 커질 듯
‘편의점 꿀조합’ 비법 공유도
2030세대에게 ‘가성비’가 소비의 주요 가치로 떠오르면서 편의점이 내놓은 자체상품(PB) 먹을거리들이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도시락이다. 혜리·백종원·김혜자 등 당대의 연예인과 방송인을 얼굴로 내세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지난해 3천억원에서 올해 5천억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씨유의 백종원 순대국밥 정식, 세븐일레븐의 두부스테이크 샐러드 도시락, 지에스(GS)25의 김혜자 콩나물국밥(사진) 등 도시락 품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편의점은 아예 1인가구와 싱글세대를 겨냥해 일반 식품업체들이 통상적으로 내놓는 용량의 공식을 깨며 편의점 마니아들을 유혹하고 있다. 예컨대 편의점 씨유(CU)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요구르트 구매가 어린이와 청소년보다는 20~30대 여성층이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일반적인 60㎖ 소용량 대신에 파격적으로 500㎖짜리 대용량을 내놓아서 인기를 끌었다. 또 커피음료를 캔커피 같은 소용량이 아니라 대용량으로 싸게 사서 마시고 싶어하는 1인가구의 수요를 겨냥해서 냉장보관이 가능한 페트병 믹스커피 1ℓ 용량을 지난해 처음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누리꾼들은 값싼 편의점 먹을거리를 맛있게 먹는 비법들을 ‘편의점 꿀조합’이라고 부르며 저마다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한다. ‘생생우동에 맛김치를 얹어먹으면 김치우동이 완성된다’거나 ‘사리곰탕 용기면에 고향만두를 넣어먹으면 만두곰탕이 된다’ ‘떡볶이에 스트링치즈를 얹어 전자렌지에 돌리면 치즈떡볶이가 된다’는 식이다. 2030세대 소비자들이 기성상품을 조합해 편의점 먹을거리의 다양성을 오히려 넓혀놓는 셈이다.
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