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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사업비 85% 한국이 내라는 이란…수익까진 ‘머나먼 길’

등록 2016-05-17 20:05수정 2016-05-18 09:51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일 정상회담 뒤 이란 테헤란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테헤란/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일 정상회담 뒤 이란 테헤란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테헤란/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심층 분석
‘이란 52조 수주’ 속사정은…

“대박 세일즈 외교” 극찬하지만
이란선 “한국이 투자” 정반대 평가

이란 정부 돈 없어 한국 부담 커져
수출입은행등이 250억달러 대야
‘사업비 50% 이란 설비·인력 이용’ 등
착수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 산적
“장기적 안목으로 사업 평가를” 분석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 으레 ‘세일즈 외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정상들끼리 만나 우리 기업의 국외 진출 통로를 넓힌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할 때도 이런 양상은 되풀이됐다. 청와대는 “52조원(456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건설 및 에너지 재건 사업을 수주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밝혔고, 일부 언론은 ‘52조 잭팟 수주’ ‘대박 세일즈 외교’라고 맞장구를 쳤다. 반면 이란 현지 언론은 “한국이 이란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며 유독 ‘투자’를 강조했다. 한국이 특정 사업에 ‘돈을 대기로 했다’는 것으로 ‘주문을 받았다’는 의미의 수주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도 “우리 기업의 수주가 현실화되는 데 상당 기간이 필요하고, 수익 확인은 더 먼 미래에 가능하다”며 신중한 평가를 내린다. 복수의 건설사 관계자들도 “장애물이 많아 실제 수주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주목할 건 우리 수출금융기관들이 250억달러(약 29조원)의 돈을 대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출입은행(수은)이 150억달러(약 17조7천억원)를 대출과 보증 등으로, 무역보험공사(무보)가 60억달러(약 7조원)의 보증을, 나머지는 산업은행·한국투자공사(KIC) 등이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이 이란에서 공사를 하는데 그 비용의 대부분을 국책은행 등이 부담하는 셈이다. 이란 정부가 돈이 없어서라는 게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은의 150억달러 가운데 90억달러는 이란 상업은행에 대출돼 이란 각 부처가 발주하는 공사 대금으로 쓰인다. 또 수은의 45억달러와 무보의 60억달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우리 기업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에 대출되거나 이 회사가 국내외 은행에서 빌려오는 대출금의 보증으로 쓰일 예정이다. 대신 수은이나 무보는 대출이자와 보증수수료를 챙긴다.

250억달러의 돈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이 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실제 사업에 착수하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은에 따르면 이란은 전체 사업비의 15%만 제공하고 나머지 85%는 우리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조달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총사업비의 50%를 자국 건설업체의 설비나 인력을 활용하는 데 쓰도록 조건을 달았다.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신용협약이 수은 등 수출신용기관(ECA)으로 하여금 현지 업체에 들이는 사업비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비에 대해서만 최대 115%의 대출·보증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란 업체에 총사업비의 50%가 투입되는 만큼 나머지 50%의 사업비에 대해 최대 115%의 금융지원이 가능하다. 총사업비의 57.5%(50%×115%)에 해당한다. 이란 정부가 요구한 사업비 분담 비율 85%와 오이시디 협약에 따른 지원 가능 자금 비율 57.5% 사이에 27.5%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100억달러의 공사를 한다면 27억5천만달러의 자금을 제3자가 대줘야 한다는 얘기다. 수은 관계자는 “이란 정부 쪽에 총사업비의 절반을 현지 인력 채용 등에 쓰라는 요구와 총사업비의 85%를 한국이 부담하는 방식이 양립할 수 없다고 설득 중”이라며 “유럽중앙은행(ECB)이나 다자개발은행(MDB) 등으로부터 자금 조달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달러 사용 제재가 풀리지 않은 것도 금융 조달 과정을 더 어렵게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해결돼야 비로소 수주가 현실화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사업에 난항을 겪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카자흐스탄 발하슈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이 그중 하나다. 발하슈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현지를 방문해 48억달러(약 5조6천억원) 규모 수주를 따냈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발하슈 사업의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고 홍보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박 대통령 취임 뒤 ‘세일즈 외교’로 모두 675억달러(약 79조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면서 발하슈 사업을 대표적 사례(188억달러·약 22조원)로 꼽았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의 ‘자화자찬’ 한 달 뒤 현지 공사는 중단됐다. 애초 수은과 무보가 금융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지 정부와의 갈등으로 무산되면서 삼성물산이 공사 진행을 멈춘 것이다. 삼성물산은 사업이 물거품이 될 경우 투자금 2천억원을 날리게 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주한 공사의 사업비 규모는 48억달러인데, 국내 금융기관과 현지 정부 사이에 보증에 대한 이견이 있는 상태”고 말했다. 수은 직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지난 17일 카자흐스탄으로 출장을 떠났다.

실제 사업이 이뤄져도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란 병원·철도·도로 등 인프라 사업의 이익 회수 기간은 10~15년에 이른다. 해외건설협회의 한 임원은 “사우디는 자기 돈으로 발주하지만 돈이 없는 이란은 투자자가 도로나 병원을 완공한 뒤 이를 운영해 수익을 회수하도록 했다. 일부 사업은 길게는 30년에 걸쳐 수익을 회수해야 하는 것도 있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란의 정치 상황이 바뀌면 아예 회수가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오이시디는 이란의 국가신용등급을 0~7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7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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